몇 년 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때 대전에서 만났던 한 기업인이 있다. 그는 반도체 제조공정에 쓰이는 화학제품을 국산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창업 후 4~5년간 꾸준히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 외환위기로 인한 엔화 급등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도산했다. 그 후 지인 명의로 사업을 재개했지만 금융권의 외면과 주변의 싸늘한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사업을 외국인에게 넘겼다. 5년이 지난 지금 그 회사는 현재 해당 분야 국내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창업기업의 3년 후 생존률은 55%, 5년 후에는 39%로 나타난다. 실제 이자보상비율 1 미만 중소기업이 전체의 3분의1에 달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기업의 실패는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환경이나 금융시스템은 실패를 현실로 인정하지 않는다. 실패한 기업인은 부정적 인식과 냉정한 시스템에서 낙오자로 살아야 하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개별 기업의 실패가 국가 실패로 확대된다는 데 있다. 기업실패에 따르는 고용불안·가정해체·시장과 사회에 대한 불신은 경제·사회·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대통령이 재기지원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고 '재도전이 가능한 창업안전망 구축'이 국정과제로 선정돼 재기지원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다. 원활한 재도전 환경 조성을 위해 국세 마일리지 도입, 연대보증 폐지 확대 등이 추진되고 있고 중소기업진흥공단이나 보증기관 등 공공금융을 통한 직접적인 금융지원도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공공 부문의 지원만으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재기하는 기업인들이 자신의 기술력과 실패한 경험을 자산으로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도록 사회가 기회를 줘야 한다. 이를 위해 민간금융에서도 '정직한 실패'와 '준비된 재도전'을 걸러낼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 우수한 재기 기업에 대한 집중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기술과 혁신을 바탕으로 하는 창업은 창조경제의 기반이다. 창업과 성장과 재도전이 선순환되는 역동적인 경제 체계를 만들기 위해, 성공 가능성이 있는 재도전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용기를 갖고 재도전에 나서는 그들에게 '패자부활'의 기회를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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