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찾은 포항시 홍해읍의 한동대 교정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교정을 오가는 학생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강의시간이기도 했지만 학기 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한동대는 전체 학생 수가 웬만한 종합대학의 한 학년 숫자보다 적은 3,500여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규모가 작다고, 지방에 있다고 무시하면 오산이다. 한동대 신입생의 수능평균 백분율은 서울의 최상위권 대학들과 어깨를 겨루는 5~6% 수준이고, 학생 충원률은 100%다. 서울ㆍ경기 등 수도권 출신의 유학생이 총 정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전국구 대학‘이다. 졸업생들은 삼성전자, 포스코 등 국내 유수 기업뿐 아니라 인텔ㆍIBM과 같은 글로벌 기업에 입사, 실력과 인성을 평가 받고 있다. 15년째 학교를 이끌고 있는 김영길(70ㆍ사진) 총장은 “네트워킹화 된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는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어 눈을 해외로 돌려야 한다”며 “연구논문 보다는 인재양성을, 교수의 연구역량보다는 교육역량을 중시하는 학부중심대학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명문대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비결이 궁금하다. ▲ 특성화다. 한동대가 개교할 무렵 전국에 140여개의 4년제 대학이 있었다. 또 하나의 대학이 아닌 21세기에 맞는 대학을 만들고 싶었다. 94~95년은 문명사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난 해다. 94년 월드와이드웹(www)의 상용화로 본격적인 지식정보화 사회에 진입했다. 95년 WTO 체제 도입으로 글로벌 경제시대가 도래했다. 기업은 빨리 변신해서 세계적 기업이 됐는데 대학의 변화는 너무 느렸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 맞는 창의적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동대는 첫해부터 학생들을 무전공 무학과로 뽑고 있다. 학생들이 1년 동안 자신이 무엇을 제일 잘 할 수 있을지 탐색할 수 있도록 했다. 2학년에 올라가서는 전공을 택하되 반드시 복수전공을 하도록 했다. 문과 출신도 이과 전공을 택할 수 있다. 학부 단위를 벗어나서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21세기는 네트워킹 시대이자 경계가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학문의 장벽도 넘어서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개교 당시부터 세계화, 국제화를 강조하고 있다. 성과는. ▲ 한동대의 영어 교명이 ‘Handong Global University’다. 포항의 외진 산골에 있지만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 전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2002년에 아시아 최초로 국제법률대학원을 만들었다.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한다. 졸업생들은 미국 테네시주, 뉴욕주의 변호사 시험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50여명의 졸업생이 시험에 합격했다. 국제법뿐 아니라 정보기술과 국제경영 전공은 100%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 외국인 교수비율도 30%가 넘는다. -인성교육을 특히 중시하는데 ▲ 사람에게 인격이 있다면 대학에는 학격이 있다. 우리대학의 학격은 정직하고 유능한 인재를 교육한다는 것이다. 개교 때부터 무감독 양심시험을 치르고 있다. 현재는 무감독 시험이 한동대의 가장 큰 자부심이 됐다. 처음 입학한 학생들이 선배가 없고 소속감도 떨어져 교수 1명, 학생 15명으로 팀을 짜도록 했다. 교수가 멘토가 돼서 학생들의 개인적인 고민을 상담해준다. 협동심을 키우도록 전원 기숙사에서 같이 생활하도록 했다. 기숙사가 바로 인성 교육장인 셈이다. -올해 입시에서 수시전형 100%인 529명을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뽑기로 했는데 문제는 없나. ▲ 입학사정관제는 우리 같은 규모의 대학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다. 학생 수가 적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 또 이미 오래 전부터 재외국민전형 등에서 입학사정관제 유형의 선발방식을 실시해왔다. 1단계에서 서류심사 100%로 선발하고, 2단계에서 서류심사 50%, 면접 및 구술고사 50%로 선발한다. 한동대 지원자를 배출한 학교를 방문, 입학설명회도 열고 입학사정관도 더 뽑을 계획이다. -각 대학들이 교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평가를 강화하고 있다. 한동대는 어떤가. ▲ 교수 경쟁력을 논문 숫자로 평가ㆍ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나 국내 대학들이 논문 수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교수들이 강의의 질을 높이기 보다는 논문 발표를 위한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다. 당연히 학부 교육이 부실해 질 수 밖에 없다. 학부교육이 충실하기로 유명한 암허스트와 다트머스는 교수를 평가할 때 논문보다 강의능력을 우선시한다. 우리 역시 학생들을 얼마나 잘 가르쳤느냐와 팀제(멘토 프로그램)를 얼마나 잘 운영했느냐가 중요한 평가항목이다. 연구활동 항목은 세번째다. -15년째 총장을 맡고 있다. 중단기 대학 비전과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 학부학생의 30%를 국제사회, 특히 개발도상국 출신 학생들로 채우고 싶다. 지금은 5% 밖에 안된다. 전세계에서 유학을 오는 대학으로 만들고 싶다. 나중에는 이들과 함께 파트너가 돼서 전 세계로 진출하고 싶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남미 등에 파트너링 대학을 10개 정도 만들어서 인재를 양성한다는 계획도 있다. 케냐나 가나에 먼저 만들어 것 같다.
1939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미국 뉴욕 RPI 공대에서 재료공학 박사를 취득했다. 미 국방성 육군연구소 연구원과 미 항공우주관리국(NASA) 연구원을 거쳐 78년부터 95년까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지냈다. NASA 발명상을 두 차례나 받았으며 미국 저명과학자 인명사전 '미국의 과학자들'에 한국인 최초로 수록된 저명한 과학자다. 지난 95년 초대 총장이 된 뒤 지금까지 한동대를 이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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