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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5년 남짓
M&A 인력·노하우 부족하지만 中보다 경영·금융기법 앞서 유리
아쿠쉬네트 기존 직원 처우 개선
일부 경영에 한국적 요소 가미로 조직안정·이익 예상보다 30%늘어
"유럽과 미국의 쓸 만한 기업들이 시장에 쏟아져나와 있어요. 지금이 한국 기업들에는 기회입니다.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5년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후에는 중국의 무대가 될 것입니다."
지난해 휠라코리아와 재무적 투자자들이 힘을 합쳐 골프용품 세계 1위 브랜드인 타이틀리스트를 보유한 아쿠쉬네트를 인수한 것은 한국 기업의 글로벌 M&A 역사에서 일대 사건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당시 자동차와 반도체 수출로 유명하지만 '딜 메이킹(deal making)'에는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던 한국 기업이 이례적인 일을 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M&A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M&A는 글로벌 브랜드를 확보하고 기술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그러나 해외 M&A에서 많은 쓴맛을 본 한국 기업들에는 여전히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도전이기도 하다.
나이키ㆍ아디다스ㆍ캘러웨이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한 끝에 휠라코리아가 아쿠쉬네트의 경영권을 완전히 인수한 지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뉴욕의 휠라 사무실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윤윤수(68) 휠라 회장 겸 아쿠쉬네트 회장을 만났다.
"처음 인수제안을 낸 쪽에서 지난해 1억500만달러의 세전이익이 날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1억3,400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 30%의 이익을 더 올린 셈이죠. M&A 후유증을 빨리 극복하고 조직을 빠르게 안정시킨 결과라고 자부합니다."
기업을 인수하더라도 핵심 인력이 빠져나가고 조직이 흔들린다면 실패한 M&A다. 윤 회장은 "대형 글로벌 M&A로는 두 번째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며 "기존 경영진이나 직원들의 인센티브를 포함한 처우문제를 가장 먼저 정리해줬고 다음에 글로벌 현황을 파악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아쿠쉬네트는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인근에 있는 본사와 볼 공장 외에도 중국 후저우, 홍콩, 일본, 싱가포르, 영국 런던, 스웨덴,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호주, 캐나다 몬트리올 등 세계 곳곳에 공장 및 배급망ㆍ지사들을 운영하고 있다. 윤 회장은 한 달 만에 지구 한 바퀴 반을 돌았다.
이러한 그의 행보에 직원들은 처음 낯선 한국인 인수자에게 가졌던 경계감을 풀고 기업경영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게 됐다. 미국 사업장은 벌써 서너 번씩 찾았다. 타이틀리스트 프로 V1 볼을 생산하는 페어헤이븐 공장은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16년이 넘고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회사 현장을 모른 채 얘기하면 직원들이 콧방귀만 뀌게 됩니다. 그래서는 회사를 장악할 수가 없죠. 그래서 현장을 속속들이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직원들이 '한국인인데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는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윤 회장은 아쿠쉬네트 본사에 머무를 때면 직원들과 같이 사내 카페테리아에서 식사를 한다. '당신들 사장이 아니라, 당신들의 친구(I am not your boss, I am your friend)'라는 점을 강조하고 마음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노력이다. 주요 간부들이 회사경영 전반을 알 수 있도록 한 달에 한 번 주요 부서장들이 참여하는 경영회의 등 일부 한국적인 요소들도 가미하기 시작했다. 윤 회장은 "글로벌 기업을 경영하려면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이제 서로 웬만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M&A에 대한 얘기를 본격적으로 물어봤다. 그는 처음 미래에셋에서 아쿠쉬네트 인수를 제안했을 때 세 번이나 거절했다. 지난 2007년 휠라의 글로벌 브랜드를 인수한 후 갖은 노력 끝에 제 궤도를 찾았는데 또다시 엄청난 도전에 나서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1위의 골프용품 업체와 성장하는 아시아 시장을 엮으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비전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휠라코리아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아쿠쉬네트를 인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 경험과 팀워크를 꼽았다. "M&A 협상은 양쪽의 이익이 첨예하기 부딪치기 때문에 회의장을 박차고 나갈 정도로 험한 분위기가 서너 번은 돼야 딜이 끝난다"며 "필라 본사를 인수하고 이후 펀드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열 번 이상 딜을 했는데 이런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중요한 고비에서 가진 모든 것을 거는 승부사 기질도 빼놓을 수 없는 승리의 요인이다. 윤 회장은 아쿠쉬네트 인수에 참여한 재무적 투자자들이 담보를 요구하자 그가 가진 휠라코리아 지분 대부분을 내놓았다. 모든 것을 건 것이다. 휠라처럼 한국 기업들에 글로벌 M&A는 새로운 돌파구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고 수출을 통해 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경쟁해야 하는 나라들이 많아져 상황이 어렵게 되고 있습니다. 남은 건 기술혁신을 통해 남들이 전혀 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든지, 아니면 선진국들의 기업을 인수해 도약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매물로 나오고 있다. 사는 쪽은 자금력이 든든한 아시아 기업들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과 일본ㆍ중국 기업들이 세계 소비재 기업들을 사들이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에 글로벌 M&A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더 가까웠다. 윤 회장은 M&A의 과정은 협상-자금조달-인수 기업경영-투자자들의 자금회수 등 4단계라고 정의했다. 이 가운데 몇 달씩 잠을 못 자면서 압박감 속에서 일해야 하는 협상력과 전혀 다른 여건에 있는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노하우가 가장 중요한데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이런 면에서 경험도 없었고 전문인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서 실패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런 면에서 30대에 JC페니에서 일할 수 있었고 화승을 거쳐 휠라에 이르기까지 30여년을 외국 기업들과 일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기업들이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다 보니 돈은 많이 들어가고 효과는 나중에 나타나는 인적자원을 키우는 데 소홀히 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1억달러는 돈도 아니다. 쉽게 날아간다. 한국 기업들이 인수 후 경영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까 M&A에 소극적이었다" 고 설명했다.
그럼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라는 속담처럼 지금이라도 나서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인력이 부족하고 노하우가 떨어져 수업료를 지불하더라도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쫓아오고는 있지만 경영이나 금융기법에서 한국에 뒤진 만큼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윤 회장은 "지금 들어와 있는 인수 제안만 하더라도 유럽 2개, 미국 3~4개"라며 "나는 더 이상 여력이 없어 할 수 없지만 기업은 기회가 있을 때 도전하고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나 금융권에서도 M&A에 관해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투자를 하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는데 이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만 기업들이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경영인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오는 2016년까지 이익을 두 배로 늘려 아쿠쉬네트를 상장시키겠다고 했습니다. 투자자들이 모두 만족한 수익을 거두고 나갈 때 비로소 하나의 M&A가 완결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지켜야죠."
아쿠쉬네트가 상대적으로 약한 어패럴 부문을 강화하고 지역적으로는 내년에 중국 시장에서 타이틀리스트 전문매장을 시작해 확산해나간다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일 하는것 외엔 별로 할 줄 아는것 없어… 일하다 인생 마칠 수 있으면 행복할 것" 정정당당한 부는 인정 받아야 이달말 서울대 졸업식서 연설 무슨 얘기 해줄까 지금 고민중 "열심히 일하다 인생을 마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일하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지난 1973년 해운공사에서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글로벌 기업의 경영인이 된 윤윤수 회장에게 일은 삶의 이유이자 행복의 원천이다. 그는 "내 나이가 68세인데 앞으로 10년 정도 더 일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마음같으면 한참 더 하고 싶은데 인생은 짧은 것"이라고 말했다. 화승에서 수출담당 임원을 역임했던 그는 미국 휠라 사업자에게 신발을 수출한 것이 인연이 돼 1991년 이탈리아의 휠라 본사와 합작해 휠라코리아를 설립했다. 그리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주도해 매년 3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며 국내 시장에 안착시켰다. 당시 160만달러에 달하는 그의 연봉은 세간에 화제가 됐다. 2005년에는 직원들과 함께 휠라코리아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오너의 길로 들어선 데 이어 2007년에는 휠라 글로벌 브랜드 사업권을 전격 인수해 재계의 주목을 받았었다. 가장 어려운 때는 2007년 글로벌 휠라를 인수한 다음이었다. 미국에서 매년 적자가 수천만 달러씩 쌓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도가 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 나날이었다. 매일같이 돈 깨지는 소리에 (인수를) 잘한 건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를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 고비를 넘기고 구조재편을 통해 회사를 제 궤도에 올려놓은 지금 한결 여유를 찾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윤 회장은 정도경영과 투명경영을 철학으로 삼고 있다. 기본에 충실하고 뿌리가 튼튼한 것보다 더 중요한 성공비결은 없다. 직원들에게도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또 충분히 벌어서 국가와 직원, 그리고 사회와 나누기 때문에 정정당당한 부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경기 화성의 시골에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열심히 일해서 성공을 거둔 나 같은 사람이 이 사회에 더욱 많아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히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위기 이후 한층 심각해지고 있는 청년실업난과 양극화에 좌절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조언해주기를 부탁하자 그는 "안 그래도 이달 말 서울대 졸업식에서 연설을 하기로 약속했는데 무슨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며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했던 '항상 갈망하고, 바보같이 우직하게 살아라(Stay Hungry, Stay Foolish)'라고 했던 것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약력 ▦1964년 경기 화성 ▦1965년 서울대 치의예과 입학 ▦1974년 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73~1975년 해운공사 ▦1975~1981년 JC페니 근무 ▦1981~1984년 화승 수출담당임원 ▦1984년~현재 케어라인 대표이사 회장 ▦1991년~현재 휠라코리아 대표이사 ▦2008년 이탈리아 국가공로훈장 수상 ▦2009년~현재 한국무역협회 비상근 부회장 ▦2011년 아쿠쉬네트 인수 ▦저서 '내가 연봉 18억원을 받는 이유(1997년)'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산다(200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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