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국채 투매사태에 글로벌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유럽 국채 수익률이 급등한 여파로 지난해 중순부터 초강세를 보이던 달러화는 약세로 돌아선 반면 유로화는 강세로 선회했다. 특히 선진국 국채금리가 동반 급등하고 외국인 투자가들의 위험자산 회피심리가 커지면서 신흥국 통화가치는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올해 말께 강달러가 귀환할 경우 글로벌 외환시장이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신흥국 위기가 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주요 10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가 지난달에만도 3%나 하락하면서 3개월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달러화가 월간 기준으로 하락하기는 지난해 6월 이후 10개월 만에 처음이다. 반면 지난달 유로화 가치는 10개 선진국 통화 대비 1.9% 오르며 올 들어 하락폭이 5.8%로 줄었다.
이는 미국 국채금리에 비해 글로벌 국채 투매사태의 진앙지인 유럽 국채금리 상승폭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날 미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장중 한때 2.366%로 지난 6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전날보다 0.03%포인트 떨어진 2.28%로 마감했다. 반면 유럽 국채 수익률은 6개월래 최고점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이날 독일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0.68%로 전날보다 0.07%포인트 올랐고 이탈리아 10년물 금리도 1.85%로 마감하며 0.08%포인트 급등했다.
금리 상승으로 높아진 유로화 자산 투자 매력은 달러화에 하락 압박을 가하고 있다. 최근 미 경제지표 부진으로 연준의 기준금리 조기 인상 가능성이 낮아진 것도 달러화 약세에 한몫을 했다.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의 브라이언 다인저필드 외환전략가는 "유럽 국채 매도가 지속되면 유로화 상승 압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ㆍ미국 등 선진국의 국채수익률 동반 상승은 아시아 신흥국 통화 급락을 촉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태국 밧화 가치는 지난달에만도 거의 7%나 폭락하며 달러 대비 2009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지난 19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 수준까지 급락했다. NN투자파트너스(NNIP)는 3월 현재 지난 9개월 동안 신흥국에서 유출된 자금이 6,001억달러로 2008~2009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많았다고 집계했다.
문제는 최근 달러화가 선진국 통화 대비 약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신흥국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시장에서는 유럽중앙은행(ECB)이 내년 8월까지 양적완화를 지속하는 반면 연준은 올 9월께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말에는 달러화 가치가 유로화 대비 다시 강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선진국 금리상승에 달러화 강세라는 대형 악재까지 한꺼번에 겹칠 경우 신흥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의 대탈출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다. 이날 윌리엄 더들리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시기는 불투명하지만 연준의 금리 인상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체제변화(regime shift)'를 초래할 것"이라며 "특히 몇몇 신흥국은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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