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수장으로서 심혈을 기울이는 것 중 하나가 여성 간 국제교류다. 인도네시아ㆍ캄보디아ㆍ베트남ㆍ미얀마 등의 공무원, 전문가,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들과 함께 여성발전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의 경제발전과 여성발전을 함께 공유하는 시간도 있다. 이들 나라들은 남녀 격차 문제도 한국보다 낫고 여성 장관 수도 대개 3-4명으로서 양성평등은 한국보다 더 잘 돼 있다고 자부심을 갖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무엇을 배우려는 것일까. 우리 연구원에 무엇인가를 배우겠다고 방문하는 사람 중에는 중국인ㆍ일본인ㆍ마카오인ㆍ홍콩인들도 있는데 이들은 한국의 여성정책, 여성정책연구소의 설립 및 운영 방법을 알고 싶다고 한다.
물론 많은 국가들이 공적개발원조(ODA)사업을 통해 원조를 받으면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경제발전이다. 도로를 깔고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 우선시되고 있지만 여성발전을 이룬 한국여성의 저력을 알고 싶어하고 드디어 여성대통령을 배출한 여성들의 비결을 전수받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은 수혜국이었던 국가에서 원조를 지원하는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 된 유일한 국가이므로 최근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의 발전경험 공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산업발전과 개발원조의 역사가 짧지만 또 다른 강력한 힘이 있다. 성평등ㆍ소비자보호ㆍ 환경ㆍ인권과 같은 여러 분야 이슈에서 NGO 활동을 통해 국민적 관심사가 공유됐던 것이다. 정부와 기업의 투명성, 청렴성 및 효율성을 향한 국민의 민주적 합의가 있었다. 한국은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한 초기, 성평등에 관한 권고를 받았던 국가지만 지금은 많은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까지도 여성정책 및 여성정책 연구를 배우러 오는 모범사례가 됐다.
성별영향분석평가, 성인지 예산, 성인지 통계(양성평등 영향분석, 양성평등 예산, 양성평등 통계) 등 성평등 정책과 여성 농ㆍ어업인 육성정책,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정책, 여성기업인 지원정책, 일ㆍ가정양립 지원정책 등 우리나라가 그동안 이룩해온 여성정책과 그 관련 법ㆍ제도의 발전상은 충분히 이들 개발도상국에 전수해줄 만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형 공적개발원조사업의 모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 시점에 한국인의 세금으로 수행되는 공적개발원조사업을 어떻게 낭비하지 않고 알뜰하게 수행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 해법은 개발원조사업의 요소요소마다 여성의 특성을 고려한 여성정책을 스며들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개발도상국에 한국의 발전 및 여성발전 비결을 전수하는 것뿐 아니라 그 국가의 여성들에게 다가가는, 그들에게 필요한 사업을 전개하는 새로운 한국형 ODA사업방식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들 스스로 민주적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시아 개발도상국가들은 대부분 결혼이민자들에 의한 다문화가족을 통해 우리 한국 사회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정부는 제2차 다문화가족정책기본계획에서 국내 결혼이민자들 및 그 자녀들의 경제적 활동 지원과 결혼이민자들 출신국과의 협력방안까지 제시하는 등 ODA사업과의 접목에 적극적이다. 이와 같이 한국은 아시아의 여성정책 허브국가로서 국제 여성계에서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더 많은 한국형 ODA가 여성정책을 접목시킨 모습으로 성과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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