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제작하면서 정형화된 컴퓨터 폰트 보다 손으로 직접 글씨를 입력하니 매력이 더해 방송에 도입하게 됐는데 그게 최근 유행하는 ‘캘리그래피(calligraphy)’라네요.” ‘붓쟁이’로 더 알려진 화진화장품 사내방송국 책임PD 진성영(37ㆍ사진) 캘리그래퍼(calligrapher)는 23일 “방송에 대한 끝없는 욕심으로 7년 전 붓글씨를 도입했는데 그것이 방송에 캘리그래피를 도입한 초기”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손글씨를 디자인한 캘리그래피는 ‘산사춘’ ‘참이슬’ ‘타짜’ ‘뉴하트’ ‘쾌도 홍길동’ 등 술ㆍ영화ㆍ드라마 할 것 없이 도입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손으로 쓴 글씨가 국내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4~5년 전의 일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붓글씨는 서당에서나 배우는 고루한 작업으로 치부됐다. 진 캘리그래퍼는 “캘리그래피를 시작한 후 붓글씨의 매력을 점점 알아가고 있다”며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어떤 마음으로 썼느냐에 따라 글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그 매력을 더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붓글씨를 별도로 배운 적이 없다. 그렇지만 KBC 광주방송 보도특집 ‘나비곤충 세상을 깨우다’ ‘천적’ 등 방송사들의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화장품 회사 파코메리의 건강기능식품 ‘여행’, 제천 의병제 포스터 ‘팔도에 고하노라’, 100가지 야생식물로 만든 약술 ‘청정 산야초’, 프랜차이즈 메밀국수 전문점 ‘메밀꽃 피면’, 분당 동양건설 타운하우스 분양광고 ‘동양 라샹스의 첫키스’, 출판사 인문적상상의 홈페이지 메인 글씨 ‘인문학적 상상력 우리에게 무엇인가’ 등 50편 이상에 캘리그래피를 제작했다. 그의 작업은 글씨를 멋지고 예쁘게 쓰는 데 머물지 않는다. 진 캘리그래퍼는 “아파트 분양 카탈로그에 올라갈 글자의 의뢰가 들어오면 그 아파트 모양과 주변 여건ㆍ풍경 등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몇 번씩 그 장소를 찾아간다. 화장품은 직접 사용도 해보고 책은 몇 번씩 읽어보는 등 그 작품에 대한 이해도와 의뢰인이 만들고자 하는 전체 윤곽을 파악하는 게 필수”라고 강조했다. 많은 작품을 한 그지만 의뢰인과의 안목 차이는 매번 넘어야 하는 산이다. 새롭고 감각적인 디자이너의 미감에 맞춰 글씨를 쓰면 의뢰인이 퇴짜를 놓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써서 줬는데 ‘글씨가 맘에 안 든다’ ‘내가 써도 이 정도는 쓰겠다’며 심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삼진아웃제’를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진아웃제란 의뢰인에게 세 번까지 글을 바꿔 보여준 후에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계약이 자동 파기되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전통예술 민속 등 요즘 세대들에게 잊혀져가는 글씨를 발굴해가는 게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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