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컬렉터의 집에 소장품을 보러 갔다. 평상시에도 교분이 있어 집에 자주 들렀던 차였다. 근데 웬일이었을까. 그 날은 유독 그분께서 소장하고 계신 미술품이 아니라 집이 눈에 띄었다. 평상시에도 집이 참 웅장하면서도 유려한 면이 있다고 느꼈는데 그 날은 주거기능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예술품을 대하는 느낌을 받았다.
궁금해서 집주인에게 어떤 유래가 있는 집인지 물어봤다. 집주인은 반색을 하더니 집의 유래에 대해 신이 나서 얘기했다. 알고 보니 한국의 건축 1세대를 대표하는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집이라는 것이었다. 어쩐지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그 후 집주인의 고민이 기가 막혔다. 부동산들이 집을 사려고 혈안이 됐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땅을 사기를 원하고 집을 부숴서 고급 빌라를 지어 분양하기를 원했다. 허나 이 분의 소망은 집을 부수지 않고 잘 보존해줄 수 있는 분에게는 팔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난 1980년대 후반에 피악(FIAC)이라는 아트페어에 참가하기 위해 파리에 간 적이 있는데 나는 예술의 도시로 명성이 높은 파리는 어떤 곳일까 무척이나 기대됐다. 아트페어 전시는 유서 깊은 그랑팔레에서 이뤄졌다. 그랑팔레는 1900년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유서 깊은 건축물로 훌륭한 건축미가 돋보이는 파리의 자랑거리다. 재개발된 서울의 높은 건물, 새 건물, 한강변에 성냥갑처럼 서 있는 아파트에 익숙한 나로서는 파리가 완전히 다른 개념의 세계였다. 파리 시내에 있는 건물들은 예전에 지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마음대로 허물고 새로 짓지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여행객인 나의 눈에도 파리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역사와 전통의 아름다움이 녹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간송 전형필 선생의 가옥이 문화재로 등록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또한 서울시에서는 우수 디자인 건축물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재급 건축물들이 개발논리에 밀려났던 1970-1980년 개발시대를 돌이켜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서울 곳곳에 남아 있는 한국 모더니즘 건축 거장들의 건축물들이 시대착오적인 개발시대 논리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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