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생활 9년째인 박모(32ㆍ여)씨는 여태껏 1년에 15일인 연차를 다 써본 적이 없다. 사장이 15일 중 8일을 법정 공휴일에 포함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박씨는 나머지 7일 중 여름휴가 명분으로 5일을 쉰다. 직원이 20명이 채 안 되는 기업에 다니는 박씨로서는 회사 사정을 강조하는 사장에게 반박할 수 없었다.
고용노동부 산하 00지방노동청 근로감독관이 박씨의 회사를 감사하겠다고 통보했을 때 박씨는 내심 반가웠다. 근로감독관이 그와 동료의 잃어버린 휴가를 되돌려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감사 준비로 야근이 늘어났지만 박씨는 참았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그에게 법정공휴일 연차포함은 합법이라고 밝혔다. 막연히 사장이 탈법을 저지르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박씨와 직원들은 망연자실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감사로 박씨와 동료들은 사장에게 항의할 근거가 없음을 확인 받은 셈이다.
사실 박씨가 야근을 감수하며 만든 감사 서류 중에는 연차를 15일 다 사용했다는 가짜 확인서도 들어있었다. 연차에 법정 공휴일이 들어있으면 '법적 하자는 없지만 근로감독관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노무사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그 밖에 박씨가 만든 서류에는 연차보상비 지급 확인서, 성희롱 예방교육 실시 확인서, 사규 사전 통보 확인서 등이 있었다. 모든 게 근로감독관이 싫어하거나 적발할 만한 상황을 감추려고 만든 증거였다.
박씨는 계약직으로 일하던 전 직장에서 4년간 수천만원의 교통비를 받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회사 사규는 애매모호했고 노조도 정규직이 아니라고 보호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노조나 정부는 박씨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박씨에게 이번 대선 후보들의 일자리 공약은 어떨까. 막연하게 근로자를 위한다는 구호만 있지 막상 법과 현실은 따로 노니 박씨는 그게 더 화가 난다. 지금 있는 법도 안 지키면서 자꾸 빈 공약만 내고 있는 정치권을 보면 투표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게 박씨의 토로다.
하지만 박씨는 이번 대선에 꼭 투표할 생각이란다. "저는 일자리 공약만 보고 선택할 겁니다. 그나마 누가 덜 나쁜지 찾아내고 찍어줘야 더 나쁜 공약을 낸 후보가 정신을 차릴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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