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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이 시공중인 주롱 유류비축 기지공사는 해저 바위를 뚫어 초대형 유조선 5척과 맞먹는 기름탱크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총 사업비 7억1,400만달러(약 7,700억원)가 투입되는 주롱섬 해저 석유비축기지는 해저 일반 도로터널이나 광산과 달리 다양한 최첨단 건설공법이 필요하다. 단순히 암반을 깨고 넓은 공간을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저 100m 및 130m에 1,2층으로 나눠 각종 운전시설과 유류 저장탱크(길이 340m짜리 2개) 5기(機)를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체 터널의 길이만 11.2㎞. 건설 장비들이 쉴새 없이 지나다니는 폭 12m 높이 10m의 터널은 미로와 같다.
석유 저장량이 30만톤급 초대형 유조선 다섯 척과 거의 맞먹는다. 초대형 프로젝트답게 현장 장비에도 '대형'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점보 드릴', 대형 불도저(휠로더), 덤프트럭…. 이 장비를 나르기 위해 설치된 리프트(4개) 역시 초대형·초고속이다. 발파석을 가득 실은 45톤짜리 덤프트럭을 지상으로 실어 나르는 데 1분40초면 족하다.
해저 암반을 뚫을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바위산 같은 암벽을 깨는 것이 아니다. 바로 곳곳에서 쏟아지는 바닷물을 막는 것이다. 2010년 1월에는 당초 예상보다 10배 이상 많은 바닷물이 터널 안으로 밀려와 발파작업은 커녕 시멘트로 물줄기를 막는 데만 다섯 달 가까이 허비했다. 암반 속 해수의 압력은 10바(bar) 정도로, 수심 100m에서 전해지는 압력이다. 이를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그라우팅(grouting)'이다. 드릴로 직경 4.5㎝의 작은 구멍을 15~20m의 깊이까지 뚫은 뒤 시멘트를 주입, 주변의 작은 틈새들을 모두 채워 넣는 것이다.
해저 유류기지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은 석유증기(oil vapour·기름이 증발하면서 생긴 기체)다. 석유증기가 시설물 안에 퍼질 경우 직원들이 질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칫 폭발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석유증기가 다른 터널이나 운영시설로 퍼지지 않도록 인공 수막(Water Curtain) 공법이 도입됐다.
저장탱크마다 30m 떨어진 곳에 수평으로 작은 터널(폭 5m, 높이 6m)을 만들고 이곳에서 다시 10m마다 지름 10㎝의 구멍을 수직으로 70m까지 뚫어 물을 채우는 방법이다. 그러면 저장동굴 주위로 수압이 가해져 저장동굴의 내용물을 안전하게 가두어두는 한편, 터널 주변의 암반 사이로 물이 모세혈관처럼 퍼져 석유증기를 가두게 된다.
난공사다 보니 현장 근로여건도 열악하다. 섭씨 36도에 육박할 정도로 한증막을 방불케 하는 지하 동굴에 들어가면 30분도 채 안 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이런 무더위와 어둠 속에서 현대건설을 비롯한 현장 직원 200여명은 2014년 5월 해저 석유비축 기지 완공을 위해 하루 24시간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유류 비축기지 공사는 현대건설이 해외에서 처음으로 수주한 해저 유류 비축기지 공사(Rock Cavern Storage Project)다. 1, 2단계 공사로 계획되었으며, 현대건설은 1단계 공구의 설계, 구매, 시공 및 시운전을 턴키 방식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 공사를 수행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통해 현대건설은 앞으로 해외 지하 유류 비축기지 공사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지난해 정수현 사장이 취임한 이후 현대건설은 엔지니어링 기반의 글로벌 건설 기업을 모토로 내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현대건설은 기술력을 앞세운 신사업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건설은 원전, 신재생, 오일 샌드 등 신성장 동력사업 진출에 힘쓰는 한편 민자발전(IPP) 및 액화천연가스(LNG) 관련사업, 수처리사업 등 수주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동 플랜트공사 중심의 편향된 수주에서 벗어나 동남아, 남미 등의 지역에서 고부가가치 공사를 수주해 안정적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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