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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In Depth] 가족… 결혼… 직업… 꿈… 중국 서민의 내밀한 삶 엿보다

■ 다큐멘터리 차이나 (고희영 지음, 나남 펴냄)

경제성장 속 빈부격차 더욱 커져 결혼식·예물 생략하는 부부 늘고

가난한 어린이는 학교조차 못 가

자본주의 광풍에 휩쓸린 풍경… 섬세한 다큐작가 시선으로 포착

외부인이 중국에 대해 "나, 걔들 잘 알아" 할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중국역사를 업으로 삼고 평생을 공부하면 가능할까, 현지에서 5년 정도 주재원으로 있으면. 아니면 적어도 10년은 함께 살아야 할까. 중국과 한국은 역사적으로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관계를 이어왔다. 지리적으로 이웃해서만은 아니다. 전통시대 학문은 대부분 중국학(한문)이었고 행세를 하려면 이를 완벽하게 익혀야 했다. 자신의 역사보다 중국사를 달달 꿰야 했으니. 지금도 삼국지 같은 중국전통 역사서는 필독서다.

하지만 구한말 서양과 일본세력의 침투와 함께 중국과의 연결고리는 약해졌다. 일제강점기 동안은 그래도 자유왕래가 가능했다. 해방후 남북이 갈라지고 중국도 공산주의화하고 전쟁까지 치르면서 완전히 갈라졌다. 1949년부터다. 그런 세월이 40여년 이어졌다. 한 세대를 넘어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 전문가는 사라지고, 중국을 친근하게 느끼는 사람도 없어졌다. 모든 것이 미국·일본 등 서양 일변도였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다시 상황이 변했다. 한국과 중국은 1992년 수교를 했다. 인적·물적 교류도 시작됐다. 지금으로부터 겨우 20여년 전이다. 하지만 앞선 40년의 단절은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다른 사상과 생활방식, 후진적인 것 같은 경제·사회구조, 북한과의 친한데 따른 경계감, 하다못해 이상한 한자체(간자체)들까지 연쇄작용을 하면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유지시켰다. 수교이후 경제교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기업들의 진출과 투자가 급증했고 인적교류도 한해에 수백만명씩 상대방을 방문한다. 그리고 수많은 관련 서적들, 여행기, 투자서 등이 시중에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은 우리에게 먼 나라다. 외부에 폐쇄적인 중국인들의 습성과 함께 차이를 차이로 인정하지 않는 한국인들의 소극적인 자세까지 모든 것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큐멘터리 방송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저자가 이번에 펴낸 '다큐멘터리 차이나'는 현대 중국과 중국인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동안 피상적인 이해에서 오는 편견과 오해를 깨기로 한 것이다. 20년간 베테랑 다큐작가로 승승장구하던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방문한 중국에 매료돼 아예 중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2004년이다. 그로부터 10년동안 중국 서민들의 속내를 들으며 그들의 진솔하고 꾸밈없는 삶의 모습을 클로즈업하려 했다. 결과가 이 책이다.

책의 구성도 색다르다. 전체를 2개의 부분으로 크게 나눈후 개별적으로 생활의 주요 아이템을 잡아 내용을 구성했다. 1부는 애(愛), 혼(婚), 식(食), 인(人), 주(住)이고 2부는 빈(貧) 부(富), 직(職), 홍(紅), 몽(夢)이다. 모두 소소한 생활사를 통해 거대 중국을 구성하는 체계를 잡아나갔다. 세부적으로 보자.



'애'의 첫 이야기는 '형제'에 관한 이야기다. 허난성 가난한 농촌마을에 역시 찢어지게 가난한 형제가 있었다. 동생이 형에게 제안한다. 내가 돈을 대줄테니 형은 도시에 가서 성공하라고. 형은 제안을 받아들이고 도시로 간다. 각고의 노력끝에 나름대로 성공해 시골의 동생에게 일어설 기회를 준다. 저자는 에피소드에서 덩샤오핑이 말했다는 '선부론'을 생각해낸다. '혼'은 배금주의 중국에서의 결혼생활을 풀이했다. 결혼식과 예물 등을 포기하고 그냥 사는 '나혼(裸婚)'과 함께 상대배우자에게 요구하는 '충성서약'도 재미있다. '식'에서는 경제성장과 함께 커지는 빈부격차의 와중에 먹는 것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을, '인'은 이류계급으로 전락하고 있는 농민공 문제를 각각 다룬다. '주'는 도시개발과정에서 밀려나는 철거민, 소시민들의 아픈 사연을 담았다.

2부는 보다 구조적이다. '빈'과 '부'에서는 점점 커지는 빈부격차를 말한다. '빈'은 너무 가난해 학교도 가지 못하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부'는 개혁개방이후 일확천금을 손에 넣은 사람들을 꼬집었다. '직'에서는 중국내 7개의 칼라, 즉 직업계급을 담았다. 화이트칼라·골드칼라·핑크칼라·그레이칼라·블루칼라·레드칼라·블랙칼라 등이다. 여기서 레드칼라는 공무원집단, 블랙칼라는 그중에서도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집단을 말한다. '홍'은 개혁개방 이후 빈부격차 확대와 함께 다시 일고 있는 공산주의 향수를, '몽'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서민들의 꿈을 담았다.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우리가 중국을 파편화된 이미지로만 파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의 정치와 역사에 무지해서가 아니라 인구의 99%를 차지하는 평범한 서민들의 삶과 그 삶 속에 흐르는 꿈과 사상, 그리고 아픔을 몰랐기 때문임을 깨닫게 된다. '다큐멘터리 차이나'는 정부의 공식문서가 기록하지 않은 역사, 역사밖의 역사인 중국 서민들의 서사들을 여성 다큐작가 특유의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그들이 문화대혁명이나 개혁개방 정책과 같은 중국 근현대사의 고비를 어떻게 넘어왔는지, 현재 불고 있는 자본주의 광풍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가족과 일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 등등. 더불어 그들의 고군분투하는 일상과 소박한 희노애락의 얼굴을 한눈에 보여주는 풍부한 사진들도 흥미롭다. 이 책을 통해 중국이라는 거대한 '풍경' 속에 작은 점처럼 보이던 중국인들의 삶을 하나의 '의미'로 읽을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값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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