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를 걷어붙이며 민생경제 회복에 팥죽 땀을 흘리고 있고, 링거를 맞아가면서 해외순방을 강행하는 노력과 열정에 비하면 ‘중간 성적표’치고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국민들을 감동시키는 뭔가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만남’이고 ‘소통’이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조정, 국회법 개정안과 연계시켰고 새누리당은 이를 덥석 받아들였다.
새정연은 홈플러스의 1+1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며 여당을 몰아붙였고 데드라인에 몰린 새누리당은 혹 떼러 갔다가 되레 혹을 하나 더 붙여오는 혹부리 영감이 되고 말았다. ‘홈플러스’ 정당과 ‘혹부리’정당이 연출하는 블랙 코미디를 지켜봐야 했던 국민들의 마음은 씁쓸하기만 했다.
국민들은 박 대통령에게서 솔로몬의 해법을 기대했지만 박 대통령은 중재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공무원연금법과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당청(黨靑)은 서로의 진의(眞意)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협상 결과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새누리당은 친박계와 비박계가 감정싸움을 하는 꼴불견을 연출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는 강공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비정상적인’조치를 취했다. 당청 관계는 바퀴가 떨어져 나간 수레마냥 헛돌았고 집권 여당은 계파간 욕설과 비방을 확대재생산하면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국민을 위하고 민생을 돌보는 ‘바른’정치는 어디에도 없었고 당리당략만 꾀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나쁜’ 정략만 있었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지도부와 만나 의견을 나누고 협상 내용과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면 이 같은 국가적인 사달이 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여당, 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국정을 논하고 지지와 협조를 구하는 것에 인색한 편이다. 혹여 정치 이벤트로 여겨질까 조심스러워 하는 눈치다.
결코 그렇지 않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여야 합의가 안되면 법안 통과가 아예 불가능한 오늘날의 왜곡된 정치현실에서는 박 대통령이 더더욱 여야 지도부를 만나 국정을 논해야 한다. 국회법 개정안 사태가 재현되지 않도록 새누리당과는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며 정책공조를 굳건히 다져야 하고 문재인 대표 등 야당 지도부를 만나서는 정책 추진에 대한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먼저 다가서야 한다.
박 대통령은 16일 김무성 대표와 새누리당 2기 지도부를 만난다. 일회성 상견례에 그쳐서는 안 된다. 당장 노동시장 개편, 4대 부문 구조개혁 등 굵직한 현안들이 놓여 있고 집권 하반기로 접어들면 갈등요인이 더 큰 국정과제들이 속출할 것이다. 여당, 야당을 가리지 않고 자주 지도부를 만나 의견을 구해야지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국민들은 지시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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