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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 2단지 53㎡(전용면적)에 전세 보증금 1억2,000만원을 내고 살던 김모씨는 지난달 인근의 주공 1단지 50㎡ 월세로 이사했다. 철거를 앞두고 새로운 전셋집을 구해야 했지만 전세 매물을 찾기 힘들어 결국 월세를 선택한 것.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65만원을 내고 있는 그는 또다시 주공 1단지 이주를 걱정하고 있는 처지다. 김씨는 "월세 부담이 만만치 않지만 지금 가진 돈으로는 이 주변 어디로도 갈 수가 없다"며 "인근 다가구주택을 알아보다가 경기 용인까지 이사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 재건축 이주가 본격화하면서 우려했던 나비효과가 현실화되고 있다. 전셋값이 폭등한 가운데 서초구 월세 거래 비중이 40%대를 넘어섰고 강남권 인근 빌라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전세 난민이 외곽으로 옮겨가면서 수도권 전셋값이 크게 오르는 등 강남 재건축 이주 여파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하반기까지 1만8,000여가구 이주…강남 월세 거래 비중 첫 40%대=14일 서울시와 업계에 따르면 현재 강남 4구(강남·강동·서초·송파)에서 이주 중인 가구는 약 1만4,000여가구다. 가락동 시영아파트(6,600가구)가 마무리 단계인 데 이어 고덕주공 2단지(2,771가구), 개포주공 2단지(1,400가구), 삼익그린1차(1,560가구), 신반포5차(55가구) 등 7,700여가구가 한창 이주하고 있다. 향후 예정 물량까지 포함하면 올 하반기까지 최소한 1만8,000여가구의 강남권 재건축 단지 이주가 예정돼 있다.
1만4,000여가구 이주가 시작되면서 당장 강남권 임대차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기존 아파트에서 빠져나온 세입자들이 치솟는 전셋값과 매물부족 현상으로 보증부 월세를 선택하고 있다. 서초구의 경우 지난 2월 월세거래 비중이 34.5%를 기록했으나 이달 13일 현재 40.6%로 급증했다. 강남권에서 사상 첫 40%대 진입이다.
실제로 이주를 시작한 개포주공 2단지 인근의 주공 1단지의 경우 전세 매물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한 달 사이에 전셋값이 1억1,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4,000만원(36%)이나 뛰었지만 나오는 족족 계약이 체결되고 있기 때문. 이주시기가 여유 있는 1단지로 넘어오려는 이주자들이 많아 전세시세가 모든 평형에서 3,000만~4,000만원가량 오른 상태다.
강남권 다른 지역도 사정은 같다. 서초구 잠원동 A공인 관계자는 "반전세를 포함한 월세계약과 전세계약은 비율이 현장에서 보면 반반 정도"라고 말했다.
◇인근 빌라 거래 늘고 수도권 전셋값·재건축 시세 상승=전세 난민들은 인근 다세대·다가구주택과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실제 개포지구나 고덕지구 인근에서는 신축빌라는 물론이고 비교적 집 상태가 열악한 다가구·다세대 주택 거래도 늘고 있는 상황이다. 개포동 G공인 관계자는 "아파트를 찾다가 지친 세입자들은 인근 다세대·빌라까지 유입된다"며 "개포4동·양재동 등지의 빌라를 기존 전세금에다가 대출을 껴서 아예 사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수도권 전셋값은 폭등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률은 서울 3.76%, 경기·인천 2.42%, 신도시는 1.95%를 기록했다.
재건축 단지 값도 상승세다. 이주가 현실화되면서 기존 재건축 대상 아파트에 수요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강남 4구 재건축 아파트는 2015년 1·4분기 동안 2.33% 상승했다. 이 같은 재건축 단지 상승은 서울 지역 분양가 상승으로 연결되는 등 나비 효과가 하나둘 현실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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