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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피디의 Cinessay] 혁명기의 사랑과 이별 '닥터 지바고'


같은 영화도 나이에 따라 보이는 부분이 다르다. 젊어서는 흑백 논리로 옳고 그름의 잣대가 우선이었다면 나이가 들수록 보여지는 '사실'과 '사실'속에 감춰진 행간의 고통이 느껴지고 이해가 된다. 그래서 쉽게 남의 인생을 평가할 수가 없어진다. '닥터 지바고'(1965년작)도 볼 때마다 인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질기고 가혹한지 돌아보게 만드는 명작이다.

닥터 지바고, 유리(오마 샤리프)는 고아가 된 후 그로메코가(家)에 입양된다. 유리는 입양된 가정의 딸, 또냐(제랄딘 채플린)와 사이좋게 자라며 의학을 공부해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 하는 아름다운 청년이 된다. 하지만 혁명기의 러시아는 혼란 그 자체다. 노동자와 학생들이 학살 당하는가 하면 오랜 군주들이 몰락하기도 하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 의사가 된 유리는 또냐와 약혼을 하지만, 우연히, 라라(쥴리 크리스티)와 마주친 후, 그녀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잊지 못한다. 라라는 순수함과 요염함, 성숙함과 천진함,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갖은 여인이다. 이후 유리와 라라는 긴 세월에 걸쳐 우연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사랑이 깊어진다.

그런데 이 영화가 간단치 않은 것이, 유리와 라라는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각자의 배우자, 또냐와 파샤도 사랑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혁명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각자의 배우자에게는 어떤 동지애를 느끼는걸까? 의문은 남지만,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어차피 내 인생은 남이 이해해주기 어렵다. 나는 '과정'을 살아가지만 타인은 나의 '결과'만 보기 때문이다. '닥터 지바고'에는 여러 유형의 사랑이 나오지만, 나는 유리와 라라의 사랑이 아닌, '유리와 또냐의 사랑'에 주목한다. 또냐는 어려움 속에서도 진정한 기품을 유지할 수 있는 드문 여인이다(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처럼) 또냐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것을 알지만 그 마음을 존중해준다. 남편 유리가 얼마나 순수하고 바른 사람인가도 함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유리도 또냐를 깊이 사랑했다고 본다. 또냐는 친구이자 아내이자 후원자이자 동지였고 어떤 의미에서는 엄마였다. 유리는 라라를 '여성'으로 사랑했지만 또냐는 '여성이 갖을 수 있는 모든 덕목'을 갖춘 이상향으로 사랑했다.



여기서 또냐가 울고불고 유리와 라라를 비난했다면 '사랑과 전쟁'이 되었겠지만 의연한 또냐 덕분에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미화된다. 하지만 또냐와 상관없이 유리와 라라의 사랑은 이어지지 않는다. 혁명기의 러시아 상황이 사랑이라는 개인적 문제에 집중하게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유리, 또냐, 라라, 파샤는 각각 흩어지고 수년이 흐른 후, 전철에서 라라를 발견한 유리가 미친듯이 그녀를 뒤?아가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때 라라는 유리와의 사이에서 난 딸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는 것도 이 남녀의 비극성을 더해준다. 이 영화는 '라라의 테마'로 불리는 주제곡도 유명하지만, 마치, '닥터 지바고'를 연기하기 위해 태어난 듯한 오마 샤리프 때문에도 오래 기억될 영화다. 지난 주 오마 샤리프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떠나는 라라를 얼음궁전 유리창을 통해 안타깝게 지켜보던 유리의 눈빛이 부고 소식과 겹쳐지면서 새삼, 인생은 허무하지만, 닥터지바고, 오마샤리프는 영원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조휴정PD(KBS1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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