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가치가 1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장중 달러당 110엔대까지 떨어졌다. 지난 한달 동안 달러화에 대해 5엔 이상 급락한 엔화가 이날 마침내 심리적 마지노선인 110엔대까지 밀리자 시장에서는 엔저 흐름이 상당기간 이어지며 낙폭이 한층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달러당 130엔까지 폭락할 가능성도 제기되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급격한 환율변동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엔화 가치는 이날 오전11시18분께 달러당 110.08엔까지 하락해 미국 리먼 쇼크 직전인 2008년 8월25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통화완화 정책의 출구를 찾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달리 일본은행의 금융완화 정책이 지속되면서 미일 간 금리차가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되며 엔화 매도세가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엔저 흐름이 앞으로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의 통화완화 및 무역적자 기조가 엔화 약세를 초래하는 구도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며 장기 엔저 시나리오가 시장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신규 발행 2년물 국채금리가 0.5%대에 달하는 반면 일본 국채금리는 0.07%대로 이미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는 상황에서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앞당겨질 경우 고금리의 달러화로 자금이 쏠리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는 말이다.
후지시로 고이치 다이이치생명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약 2년에 걸쳐 엔화가 하락 기조를 보일 것"이라며 올해 말 115엔대까지 추가 하락한 후 달러당 125엔 정도까지 약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엔화 매도세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달러당 130엔 부근까지 오버슈팅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UBS증권의 아오키 다이주 이코노미스트도 "미국의 2년물 금리에 상승압력이 작용하는 동안에는 엔저·강달러가 이어질 것"이라며 "내년 이후 120엔까지 하락할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엔화가 브레이크 없는 장기 하락궤도로 진입했다는 전망이 속출하는 가운데 얼마 전까지도 일본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마법의 주문'처럼 여겨졌던 '엔저'는 일본 경제의 주요 불안요인으로 변하고 있다. 이날 아마리 아키라 경제재정재생상은 "환율 수준에 대해서는 코멘트하지 않겠다"면서도 "일반적으로 과도한 엔고나 과도한 엔저, 지나치게 빠른 환율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가파른 엔화 약세에 대한 경계감을 드러냈다. 경제계에서도 수출기업 실적개선이라는 엔저의 긍정적 효과 못지않은 부작용에 대한 지적이 연일 제기되는 실정이다.
엔저가 일본 경제에 야기하는 빛과 그림자는 이날 일본은행이 발표한 9월 기업단기경제관측조사(단칸)에 여실히 드러났다. 이번 조사에서 자동차 등 수출기업들이 포진한 대기업 제조업의 업황판단지수(DI)가 전 분기 조사 때보다 1포인트 개선돼 13을 기록한 반면 내수기업이 중심이 된 대기업 비제조업과 중소기업 체감경기는 일제히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비제조업지수는 전 분기보다 6포인트나 하락했으며 중소기업은 제조·비제조 모두 0 이하로 떨어졌다. 마이니치신문은 엔저의 수혜를 받는 수출기업들의 체감경기는 좋아진 반면 고물가와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내수 관련 기업 경기는 악화하는 양극화가 선명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정부가 엔화 매도 개입을 단행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투기적 엔화 매도에 따른 과도한 엔저를 저지하기 위한 구두개입 차원의 엔저 견제 발언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미일 경제 펀더멘털의 차이와 중앙은행 금융정책의 디커플링이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큰 효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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