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인이자 경제학자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새로운 교환 수단에 관심이 많았다. 1729년 '지폐의 본질과 필요성에 대한 기초 연구'라는 소책자를 통해 지폐의 효용성을 널리 퍼뜨려 뉴저지ㆍ펜실베니아ㆍ델라웨어 등의 지폐 발행 계약을 따내 '지폐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공로를 인정받아 그의 얼굴은 100달러짜리 화폐를 장식하고 있다. 세계의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하면서 글로벌 경제를 좌우했던 달러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최근 금융위기로 그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법학자이자 변호사인 저자 엘런 브라운은 글로벌 금융권을 휩쓸면서 전 세계를 빚더미에 올려놓은 달러의 탄생과 그 거품을 만들어 낸 배후를 추적했다. 달러의 통화 시스템 뒤에는 월가의 극소수 거대 은행가들이 있다. 극소수 거대 은행가들은 언론에 오르내리는 금융계 큰손이나 다국적 은행의 CEO들이 아니라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고 그 모습조차 세상에 드러내지 않은 채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는 이 같은 큰손을 가장 미국적인 동화인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마법사 오즈에 비유한다. 이들은 마술사가 허공에서 비둘기를 만들어 내듯 마법처럼 뚝딱 달러를 찍어 낼 수 있는 힘이 있는 존재다.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의 연방준비은행(FRB)이 바로 그런 역할을 맡고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미국은 정부가 화폐를 발행하지 않는다. 월가의 은행들이 출자해 만든 민간 은행인 FRB가 이를 맡고 있다. 100달러짜리 한 장을 인쇄하는 데 드는 비용은 40센트. FRB는 여기에 10달러의 이자를 붙여 달러가 필요한 은행과 정부에 대출해준다. FRB는 10달러에서 40센트를 뺀 돈을 고스란히 수익으로 가져간다. 결국 미 정부와 국민은 거대 은행가들이 내 준 달러의 부채 거품 위에 올라 앉게 됐다. 금본위제도와 달리 근거없는 달러의 발행과 부채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의 금융 시스템이 거품의 배경이자 근본 원인이라는 것. 저자는 독자들을 다시 오즈의 마법사로 이끈다. 환상적인 동화로만 알고 있는 오즈의 마법사가 달러기반 금융시스템과 맥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도로시 일행이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러 가는 노란 벽돌길은 1890년대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던 금본위제를 상징하고, 도로시가 신었던 은구두는 당시 은화파가 주장한 은화해법에 빗대서 설명한다. 허수아비는 농민을, 양철 나무꾼은 공장노동자를, 겁쟁이 사자는 당시 금융권 카르텔의 권한에 저항했던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라는 불운의 정치인에 비유한다. 동부의 나쁜 마녀 역은 월가의 금융가들이 맡았다. 오즈의 마법사는 달러의 이자에 만족하지 않고 물리학자들까지 동원해 금융 파생상품을 만들어 사상 초유의 거품을 만들어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이들은 자국의 금융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금융시스템이 취약한 국가를 공격,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환란을 유도하고 그 나라의 화폐가치가 떨어지면 자산을 긁어오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10년전 한국의 외환위기도 같은 시나리오라는 설명이다. 책은 달러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충실하게 추적했다. 그러나 금본위제도의 장점은 살리고 한계는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시스템 구축이라는 교과서적인 해법의 실현 가능성에는 다소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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