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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 이병철 삼성 회장 생가
노적봉 형상 산자락 끝에 위치
집앞엔 남강 흘러 명당 중 명당
"氣 받자" 방문객 발길 이어져
연암 구인회 LG 회장 생가
조부 만회공 추모하는 '방산정'
인화경영의 발원지 '모춘당'은
구슬봉·냇물에 둘러싸여 풍요
만우 조홍제 효성 회장 생가
사방 산들이 포근하게 감싸고
기와집 앞뒤론 수백년된 나무
잔디위 정갈한 고택 품격 더해
자동차를 타고 남해고속도로를 가다 경상남도 진주시와 창원시의 중간쯤에 있는 군북나들목을 나서면 바로 의령군이다. 의령군청을 시야에 넣고 강(남강)을 건너면 강물 속에 특이한 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솥뚜껑을 엎어놓은 모양이라고 해서 '솥바위(鼎巖·정암)'라고 불리는 바위다. 이 바위에는 모양만큼이나 기이한 전설이 있다. 조선 말 한 도인이 이 바위를 보고 '바위의 다리가 뻗은 세 방향 20리(8㎞) 내에 3명의 부자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고 한다.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 LG그룹 구인회 회장, 효성그룹 조홍제 회장이 이 전설을 실현했다. 이 솥바위를 중심으로 예언의 거리인 의령군 정곡면에서 이병철 회장, 진주시 지수면에서 구인회 회장, 함안군 군북면에서 조홍제 회장이 각각 태어났다. 솥바위를 풍수지리에서는 별자리로 본다는데 우연인지 삼성(三星)과 럭키금성(金星·현재의 LG와 GS)·효성(曉星) 모두 '별 성(星) 자'가 들어간다. 세 창업주의 생가는 풍수지리적으로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배산임수로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지형이다. 물론 이들 자리가 명당이라면 인근 마을 사람 모두 부자가 돼야지 이들 세 명만 그런 행운을 누렸느냐고 반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한눈에 봐도 좋은 지형, 좋은 자리에 이들의 생가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진정한 기업가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현시대에 우리나라를 일군 기업가 정신의 원류를 찾아 의령과 진주·함안을 방문해 본다.
◇호암 이병철 회장 생가=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 있는 호암 이병철(1910~1987) 삼성그룹 창업주의 생가를 찾는 길은 어렵지 않다. 근처에 가면 생가를 알리는 팻말이 곳곳에 붙어 있다. 일반인 방문객들을 위해 생가는 지난 2007년부터 개방됐다. 국내 기업의 창업주로서는 이례적인 조치다. 국내 최대 기업군을 일군 창업주의 기운을 받으려는 방문객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인근에는 대규모 주차장까지 마련돼 있다.
집의 위치만 봐도 명당임을 알 수 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생가는 곡식을 쌓아놓은 것 같은 노적봉(露積峯) 형상의 산자락이 이어지는 끝에 위치한다. 즉 산의 기운이 생가터에 혈이 돼 맺혀 지세가 융성하다는 것이다. 또 멀리 흐르는 남강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다.
지맥과 건물 방위를 맞추기 위해 건물은 전체적으로 남서향으로 배치돼 있다. 생가 관계자는 "집 앞에는 진주에서 함안을 거쳐 흐르는 남강이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라며 "세부적으로도 풍수지리상 명당 요건은 다 갖췄다"고 설명한다.
이병철 회장 생가는 1851년 이병철 회장의 조부가 전통 한옥양식으로 건립한 것을 호암재단이 관리해오다 2007년 11월 새로 단장해 일반인에게 완전 개방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5월에 보수공사를 시작했다. 원래는 3개월 일정으로 8월 말까지 완료한다고 했는데 공사기간이 연장되면서 재개방이 연말까지 늦춰졌다고 한다. 솥바위 전설의 대표 격인 이곳 이병철 회장 생가는 솥바위에서 동북쪽 직선거리로 8㎞ 떨어져 있다.
◇연암 구인회 회장 생가=다시 남강을 거슬러 올라가 진주시로 들어간다. 지수면 승산리에는 LG그룹 창업자 구인회 회장의 생가가 있다. 우선 지수면 사무소를 찾으면 사무소 앞에 큰 안내지도판이 보인다. LG와 GS그룹의 전신인 럭키금성 그룹을 세운 구씨와 허씨로부터 파생된 주요기업들의 인맥을 모두 볼 수 있다. 구인회 회장을 비롯해 GS창업주 허준구·허창수 생가, 삼양통상 허남각 생가, LIG 구자원 본가, 성광전자(쿠쿠) 구자신 생가, 알토전기 허승효 생가 등이 안내판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지도를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개울물이 흐르는 양쪽으로 한옥들이 죽 늘어서 있다. 가장 구석 쪽에 구인회(1907~1969) 회장 생가가 있다. 지수면의 거물급 생가 중 보존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생가에는 주요 건물 2곳이 남아있다. 잔디 깔린 너른 마당 너머로 두 채의 기와집이 보인다. 연암의 조부인 만회공을 추모하는 방산정(芳山亭)이 정면에, 부친인 춘강공을 추모하기 위한 모춘당(慕春堂)이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다.
방산정은 춘강공이 연암과 함께 4칸짜리로 지었던 것을 1956년 동향으로 다시 옮긴 것으로 마루 기둥에는 만회공이 지은 칠언절구 한시가 아로새겨져 정취를 더한다. 만회공은 조선 철종 때 대과에 급제해 홍문관의 시독관과 사서를 기록 관리하는 춘추관의 기주관을 지낸 분이다.
오른쪽의 모춘당은 LG의 최고 기업문화로 자리 잡은 '인화경영'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연암의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6·25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새로 건립했다. 지금도 집안에 새 식구를 맞으면 모춘당을 찾아 가풍을 익힌다.
이 집 또한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할 만하다. 구슬봉이라 불리는 뒷산은 평안하게 고택을 감싸 안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마을 앞을 휘감아 흐르는 만궁(彎弓·반원형 활처럼 둘러싼 모양)형 냇물은 풍요를 더한다. 구인회 회장 생가는 솥바위에서 서남쪽 직선거리로 9㎞ 떨어져 있다. 다만 현재 관리를 맡은 마을주민이 살고 있어 방문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한다.
◇만우 조홍제 회장 생가=효성그룹 창업주인 만우 조홍제(1906~1984) 회장의 생가는 사방 산들이 포근하게 감싸 안은 가운데에 생가터가 부드럽게 들어앉아 있다.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 위치한 이 생가는 마을의 논밭과 집들 사이로 나 있는 길을 한참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다 보면 갑자기 기와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집 앞과 뒤에는 수백 년은 됨 직한 나무들이 집안의 뿌리를 전해주는 듯 당당하게 서 있다. 관리인을 찾았지만 연락이 안돼 집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야트막한 담 너머로 훑어본 생가는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세 사람의 생가 중에서 조홍제 회장의 생가 주위가 가장 번화하다. 인근에 군북역이 생기면서 마을에는 제법 왕래하는 사람과 차량이 많다. 이 생가는 솥바위에서 동남쪽 직선거리로 8㎞ 떨어져 있다.
/의령·진주·함안=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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