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윤 새누리당 의원(국회부의장)이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 우리 기업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입법을 추진하기로 한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은 해외 선진국에서는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는 제도다.
14일 정 의원과 한국상장사협의회 등에 따르면 차등의결권의 경우 미국·일본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20개 국가가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구글의 경우 래리 페이지 등 경영진에게 일반주보다 10배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63.7%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포이즌필도 미국·일본·유럽 대다수 국가가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소스·조미료 제조 1위 업체 불독소스는 지난 2007년 투자펀드 스틸파트너스가 경영권을 위협하자 포이즌필을 발동해 이를 효과적으로 저지하기도 했다.
선진국에서 이들 제도가 활성화된 것은 일찌감치 외국계 투기자본이 시장을 교란시키는 행위들을 경험하면서 경영권 보호 수단의 필요성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3년 SK그룹을 공격해 9,00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기고 '먹튀'한 헤지펀드 소버린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오너 일가의 편법승계와 부도덕한 행위 등으로 비롯된 반(反)재벌정서 때문에 경영권 보호장치 도입이 이뤄지지 못했다. 포이즌필은 2010년 법무부가 상법 개정안까지 발의했으나 경제민주화 바람에 막혀 무산됐고 차등의결권은 입법 추진조차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이번에는 상황이 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우용 상장사협의회 전무는 "지난해 신규순환출자 금지 등으로 편법적인 경영권 보호 수단이 약화된데다 투자 활성화를 통한 경제회복 필요성이 큰 상황인 만큼 이번에는 경영권 보호 수단이 도입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투기자본의 시장 교란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선 점도 긍정적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엘리엇매니지먼트 사태 이후 경영권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전문가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국민들의 반재벌정서가 누그러지지 않았고 야당에서는 오히려 대주주 권한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있어 국회 통과까지 가시밭길이 예상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5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 대주주 견제를 강화하는 제도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동기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부 대기업의 행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투기자본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하는 정책은 이와 별개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단기적인 투기가 아닌 장기적인 투자로 변화시켜 건전화하기 위해서라도 차등의결권 등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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