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에게 권력이란 섹스의 독점을 의미한다. 우두머리 침팬지만이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독점적으로 번식시킬 권리를 갖기 때문이다. 동물학자 프란스 드 발이 쓴 ‘침팬지 폴리틱스’는 수놈 침팬지들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정치 과정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은 네덜란드 아넴 소재 야외 동물 사육장에서 저자가 23마리의 침팬지를 6년간 관찰한 보고서다.
그들 간의 권력 투쟁은 우두머리 침팬지인 이에론에게 2인자 루이트가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작된다. 루이트는 먼저 젊고 야심적인 니키와 연합을 맺는다. 니키는 이에론과 루이트 사이에서 양다리 걸친 채 자기 가치를 한껏 높여가다 결국 루이트 편에 붙는다. 물론 이것으로 권력 다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루이트에게 권좌를 빼앗긴 이에론 역시 호시탐탐 재기(再起)를 노린다.
아니나 다를까, 1인자와 2인자인 루이트와 니키 사이에 반목과 다툼이 일면서 이에론까지 가담, 이간질과 연합의 ‘삼두(三頭)정치’가 벌어진다. 권력 교체 1년 뒤 이에론은 마침내 니키와 손잡고 루이트에게 피의 복수를 감행한다. 이번에 1인자로 올라선 주인공은 니키. 그 뒤 이에론은 또 다른 침팬지 댄디와의 연대를 통해 니키까지 추방하고 권좌에 복귀한다.
인간들 사이에 벌어지는 정치 세계라고 이들 침팬지와 다를 게 있을까. 미국·러시아·중국은 오랫동안 국제 무대에서 전략적 삼각관계를 형성해왔다. 역사는 이들 셋 가운데 두 나라가 힘을 합칠 경우 나머지 한 나라가 어쩔 수 없이 고립 상태로 빠짐을 기록해왔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 중국 방문은 삼각 외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은 1969년 소련과 대규모 분쟁을 겪으면서 양국 관계가 악화하자 철천지원수인 미국과 국교 회복에 나섰고 1979년 마침내 국교 정상화에 이른다. 워싱턴과 베이징의 화해로 소련은 철저한 고립을 맛보게 된다.
최근에는 미국 쪽이 이 삼각관계에서 왕따를 당했다. 모스크바와 베이징이 외교적 데탕트를 이루면서 미국을 퇴짜 놓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지난 21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 사이에 체결된 30년간의 천연가스 공급은 계약 규모만 4,000억달러에 이른다. 아마도 중·러 관계에서 가장 강력한 신용 담보물이 될 것이다.
푸틴에게 있어 이번 동반 관계의 의미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각종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러시아를 압박해왔다. 그러나 이번 협정으로 푸틴은 이제 동방에 강력한 동맹국을 갖게 됐음을 만천하에 선언한 셈이다.
물론 푸틴이 최종 승리를 선언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미국의 대항마인 중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당겼다지만 중국 자체가 또 다른 이름의 ‘니키’인지도 모른다. 니키는 최고 권력자 루이트 밑에서 2인자로 지내면서도 늘 건방을 떨기 일쑤였다. 그는 우두머리 루이트가 보는 앞에서조차 태연하게 다른 암놈들과 교미를 자행했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는 루이트의 권력쯤이야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행동이었다. 루이트 역시 그런 니키를 애써 못 본척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니키보다 조건이 더 우월하다. 러시아 경제가 오랫동안 정체 상태를 면치 못한 반면 중국은 연율 7%대의 경제성장률을 자랑한다. 중국은 러시아 외에도 에너지 수입원이 전 세계 산유국에 걸쳐 있다. 게다가 중국이 공업 기술이나 군수 무기를 러시아에 의존하던 시대 또한 역사의 유물이 된 지 오래다. 중국은 미국과의 쌍무무역이 러시아와의 관계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푸틴은 한마디로 중국의 노골적인 바람기조차 못 본척해야 할 신세다.
/이신우 논설실장 shinw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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