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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하다 못해 때론 발칙하고 때론 경이롭다. 독특한 설정과 상상의 옷을 걸친 연극·뮤지컬이 잇따라 무대를 수놓고 있다. 현실인 듯 현실 아닌 기묘한 무대는 색다른 감동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동심은 넣어둬…뮤지컬 '난쟁이들'=순수한 동심을 바랐다면 그 기대 잠시 접어두시라.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로 무장한 동화 속 캐릭터들은 씁쓸한, 그래서 익숙한 이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드러낸다. "기다렸던 첫날밤, 그이는 정말 꿈틀거리기만 했어. 아무리 세우려 해도 공든 탑은 무너지더라."(백설공주) "왕자님 만나서 이제 내 팔자 폈다 생각했는데, 그 새끼 완전 개털이었어."(신데렐라) 창작 뮤지컬 '난쟁이들'은 '어른이 뮤지컬(만 15세 이상 관람)'이란 수식어에 걸맞게 노골적인 성(性) 농담과 현실 풍자로 관객의 동심을 유쾌하게 파괴한다. 주인공인 난쟁이 찰리가 동화 나라 공주와의 결혼을 꿈꾸며 떠나는 모험 이야기는 순수의 상징인 동화 속 캐릭터를 한껏 비틀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숭(?) 쏙 뺀 공주들은 "타고난 공주는 그렇게 악착같이 살지 않아", "남자에겐 주는 게 아니고 받는 거야" 같은 대사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숲 속 마녀가 찰리를 향해 던지는 독설은 현실 풍자의 정점. "세상엔 노력만으로 되는 건 없어. 돈을 써야 마법이 일어나는 거야." 참신한 음악은 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만나 유쾌한 분위기를 북돋운다. 특히 속물 같은 인간관계를 꼬집은 노래 '끼리끼리'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코믹한 안무로 관객에게 웃음 폭탄을 안겨준다. 4월 26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상상하는 만큼 보인다-연극 '라이온보이'=막이 오르면 배우와 관객은 공모자가 된다. 관객은 배우의 안내에 따라 아무것도 없는 좁은 무대에서 포효하는 사자를 느끼고, 거대한 초원과 바다를 체험한다. 그 어떤 하이테크로도 구현 못 할 판타지를 만들어 내는 건 관객의 상상력이다. 연극 '라이온보이'는 고양이과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소년 찰리가 거대 제약회사에 납치된 과학자 부모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았다. 영국의 대표 극단 '컴플리시테(Complicite·공모)'가 이 거대한 스토리를 그려내는 방식은 관객의 허를 찌른다. 무대는 단출하다 못해 초라하고, 배우에겐 화려한 분장도 의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실감 나는 1인 다역 연기와 음악·조명의 조화로 관객은 홀리듯 찰리의 모험에 빠져든다. '눌리우스인베르바(있는 그대로 믿지 마라).' 찰리 어머니가 강조한 이 말은 컴플리시테가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내한공연은 지난 7일 막을 내렸다. 추가 내한은 확정된 바 없지만, 이번 공연에서 관객의 반응이 뜨거웠고, 컴플리시테가 글로벌 협업에도 적극적인 극단이란 점에서 '또 다른 만남'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이 밖에 북한군 포로 소년 '로기수'가 탭댄스에 빠져 그려가는 꿈과 희망의 이야기 뮤지컬 '로기수'가 12일 개막한다. 사진 저널리스트 베르너 비쇼프가 한국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촬영한 사진 한 장(포로들이 복면을 쓴 채 춤을 추는 모습)이 모티브가 됐다. 13일 개막하는 뮤지컬 '쓰루더도어'는 '다용도실 문이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된다'는 독특한 설정의 작품으로, 자신이 쓰는 소설 속 세계를 드나들게 된 주인공 샬롯을 통해 일과 사랑, 꿈과 현실에 대한 현대인들의 고민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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