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건 아니다.' 방위사업 비리 척결이 아무리 중요하고 일벌백계를 도모한다 해도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첫째, 새로운 내용이 거의 없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감사원이 지적한 사건 수사의 심층 확대판으로 볼 수는 있을지언정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많지 않다. 동일한 사건이 1년 가까이 재탕, 삼탕을 넘어 수없이 언급되면서 필요 이상의 혐오감을 심어준 측면이 없지 않다.
둘째, 비리 규모가 1조원대로 알려졌다는 점은 보다 심각하다. 대부분의 국민은 비리 군인들과 악덕 사업자들이 1조원대의 금액을 해먹은 것으로 인식한다. 수사하는 입장에서 성과를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방위사업과 군에 대한 인식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포퓰리즘에 기반한 '사이즈 콤플렉스'가 국면을 호도하고 있는 셈이다.
'정확한 비리 규모는 추징금액(21억3,000만원)에 가까운 것 아니냐, 사업비와 비리를 혼용한 것 같다'는 의문에 대해 합수단 관계자는 "사업비 전체는 그보다 훨씬 크고 비리와 관련된 사업비 규모가 1조원에 가깝다"고 답했다.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사업비가 1조원인 고속철도 구간을 수주하는 데 10억원의 뇌물을 썼다면 비리 규모는 1조원이 되는 것인가"라고 묻자 합수단 관계자는 "그렇게 계산했다"고 밝혔다.
합수단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따른다. 비리사업 규모가 8,402억원이라고 발표된 해군의 경우 합수단의 잣대를 그대로 적용해 시작하지 않는 사업, 시설사업 등을 정교하게 분석하면 규모는 절반 정도다. 뇌물 수수 등 비리만 합치면 규모는 합수단 발표의 100분의1 수준으로 떨어진다. 금액이 적게 나타난 육군과 공군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풀리기는 법정신의 기본인 무죄 추정의 원칙에도 합당하지 않다. 법무법인 명덕 소속의 임재흥 변호사는 "70억원짜리 무기를 100억원에 도입했다면 뇌물액 30억원을 더한 게 정확한 비리 규모"라며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비리를 뿌리 뽑으려는 노력은 인정하고 공감할 수 있으나 보다 정교한 산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기관이든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 어떤 곳도 나서지 않는 형국이다. 군은 할 말이 많은데도 항변하지 못하고 있다. '비리집단'으로 매도된 마당에 나서봐야 오해만 야기한다는 이유로 몸조심을 하는 탓이다. 감사원 역시 군과 방산업체 안팎의 원성을 사고 있다. 방산업체 관계자는 "감사원은 오랫동안 경험을 축적해 전후 사정을 잘 알고 있음에도 최근 감사 결과 발표를 보면 '방산 비리 척결' 분위기에 편승해 중심을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국방기술품질원도 마찬가지다. 시험성적서 위조 여부를 조사하면서 국산 개발로 포상해야 할 품목을 비리로 몰고 간 경우도 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은 "방위사업 비리는 분명 이적행위지만 어떤 명분이든 비리를 부풀려 사회적 불신을 초래하는 행위 또한 궁극적으로 안보 기반을 위협할 수 있기에 이적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방위산업체에 입사해 30년 동안 화포연구에만 매달려왔다는 50대 후반의 한 연구인력은 "회사를 비리와 부패집단으로 보는 것 같아 사람을 만나기 겁나고 연구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장은 "수사란 일을 많이 한 사람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의욕을 갖고 업무와 연구개발에 매진할수록 집중 수사받는 환경에서 일을 안 하는 게 상책이라는 풍토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교각살우(矯角殺牛) 형국"이라고 말했다. 채 학회장은 최고 통수권자의 각별한 관심만이 비리를 막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방위산업 육성 초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처럼 전문가로 구성된 특검단이 상시 운영되면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시스템만이 비리를 확실하게 막을 수 있다는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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