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적자규모가 법인세수 1년치와 맞먹을 정도라면 하반기에 아무리 나라살림을 알뜰하게 꾸려도 대규모 적자를 피할 길이 없다. 정부는 5월 17조원짜리 추경 편성 때 올해 재정적자 규모로 23조원을 예측했다. 그나마 성장률이 하반기에 3% 후반에 이르고 세수가 목표대로 걷힌다는 전제에서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다. 최악의 재정적자가 올 상반기에 재정집행의 속도를 높인 탓이라고 둘러대니 말이다. 재정고갈의 주범 중 하나인 복지공약 수정은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연말 재정절벽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씀씀이가 정해진 상황에서 적자가 불어나면 특단의 대책 없이는 감당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세입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해 2차 추경을 편성하는 것은 국민정서상 선뜻 선택하기 어렵다. 결국 재정집행 속도를 줄일 것인데 이는 경기진작에 역행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한마디로 재정정책이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재정절벽을 피하느라 연간 5조~6조원이라는 예산불용분을 써버린다면 내년에 사용할 재정 여윳돈이 바닥난다. 내년에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결국 상반기 재정 조기집행에 이어 하반기 추경편성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2008년부터 내리 6년 연속 재정적자를 기록한 연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곧 확정할 국가재정운용계획(2013~2017)을 통해 재정건전성 보강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135조원짜리 공약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건전재정을 아무리 외친들 말짱 도루묵이다. 공약 재설계의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나라곳간이 거덜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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