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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영역' 넘보는 생명공학…인류 희망인가, 통제불능 위기인가 [북스&]

■슈퍼컨버전스, 초융합 시대가 온다(제이미 메츨 지음, 비즈니스북스 펴냄)

유전공학과 AI·양자컴의 초융합

수년 걸리던 분석 몇분만에 끝내고

태아 유전자도 편집해 에이즈 정복

기하급수적 진보하는 기술에 맞춰

활용·통제할 제도 숙의도 속도내야







2018년 11월 중국 남방과학기술대학의 허젠쿠이 부교수는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 가위를 이용해 에이즈(HIV)에 면역력을 가진 쌍둥이를 탄생시켰다고 발표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는 HIV 양성인 아버지와 음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아의 유전자를 편집해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기술 발전의 연장선에 있는 사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직접 편집한 이 시도는 ‘신의 영역’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며 거센 윤리적 반발을 불러왔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제이미 메츨 역시 이 사건을 인류가 넘어서는 안 될 경계의 신호로 받아들인 인물이다. 그는 세계보건기구(WHO) 인간 게놈 편집 자문위원, 백악관 펠로 등을 지내며 과학과 정책, 윤리의 접점을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유전공학 혁명을 다룬 대중서 ‘해킹 다윈’, 공상과학 소설 ‘제네시스 코드’를 통해 기술 진보의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짚어온 메츨은 신간 ‘슈퍼 컨버전스, 초융합시대가 온다’에서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유전공학 등 첨단 기술이 융합된 시대에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저자는 누구보다 기술과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자다. 그러나 기술을 아무런 기준 없이 사용한다면 그 낙관은 곧 위협으로 바뀔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정 목적에 맞는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만들어내는 일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으며 그 이후의 세계는 누구도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허젠쿠이의 실험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이후 삶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메츨이 특히 주목하는 분야는 첨단 기술이 결합하며 폭발적인 변화를 일으킨 유전공학이다. 딥마인드의 알파폴드가 수년이 걸리던 단백질 구조 분석을 단 몇 분 만에 해낸 순간 인류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알파폴드는 자연계 거의 모든 단백질 2억 1400만개의 구조를 공개했고 이를 통해 대부분의 동식물에 관여하는 단백질 구조를 손쉽게 예측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한 연구팀이 10년 넘게 규명하지 못했던 박테리아의 항생제 내성 구조 역시 알파폴드를 활용해 30분 만에 실마리를 찾았다는 사례는 기술의 속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의료 기술은 이제 병을 치료하는 단계를 넘어 아프기 전에 예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메츨은 향후 5~10년 내에 개인의 면역세포를 편집해 암을 직접 공격하도록 설계하는 기술이 등장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약물유전체학은 개인별 정밀 처방을 가능하게 하고 mRNA 백신의 다음 목표는 암을 독감처럼 예방하는 것이다.

변화는 의료에만 그치지 않는다. 바이오테크는 식량과 에너지, 경제 구조까지 뒤흔들 수 있다. 유전자 가위로 곡물의 유전자를 편집해 수확량을 몇 배로 늘리고 가뭄과 병충해에 스스로 대응하는 농작물을 실험실에서 키우고 있다. 박테리아를 새롭게 설계해 기름을 생산하는 기술은 석유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와 이를 이해하고 통제해야 할 인간 사회의 속도가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진보하는데 이를 다룰 정치와 제도, 윤리는 여전히 점진적 합의에 의존한다. 민주주의 시스템은 숙의와 타협을 전제로 움직이지만 기술 혁신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간극이 커질수록 사회적 혼란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저자의 경고다.

메츨은 “19세기가 화학의 시대, 20세기가 물리학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AI와 생물학의 재설계 시대”라고 말한다. 생명의 암호를 해독하고 재설계할 수 있는 힘은 인류에게 거대한 기회이자 동시에 위험이다. 배아 선택과 유전자 편집이 의료를 넘어 인간 능력의 향상으로 이어질 경우 불평등은 경제적 격차를 넘어 생물학적 격차로 굳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는 이런 ‘신과 같은 기술’을 특정 집단이나 소수의 판단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분산돼 있는 정보를 통합해 사회 전체가 변화를 인식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의 활용법을 둘러싼 사회적 숙의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공동체가 고민하고 결정하는 과정만큼은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르고 치열해져야 한다. 616쪽. 2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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