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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간이 배 밖으로 나오다

| 최규성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

최규성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처럼 겁을 상실한 경우를 가리켜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수술 등 인위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간이 자연적으로 혹은 질병에 의해 정상보다 거대해질 수는 있다. 난해한 각종 질병을 제외하고 가장 이해하기 쉬운 사례는 무엇이건 많이 먹어 간에 기름이 가득 찬 경우다. 간은 정상보다 150~200%까지 거대해질 수 있다. 입에 풀칠할 여력도 없던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었지만 농작물을 풍족하게 수확하는 시대를 맞으면서 생긴 질병이다.

좀 더 구체적인 증거를 찾아보면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일제강점기 기록에도 수없이 많은 아사(餓死) 사례가 있다. 끼니를 때울 음식조차 풍족하지 않았으니 곡물을 기반으로 만들던 술도 소수만이 향유할 뿐 그리 대중적인 마실 거리는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16년 시행된 ‘주세령’은 일종의 주류 제조 면허제로 술에 아주 높은 세금을 매겨 술을 담그는 것은 꿈도 못 꾸게 했다. 곡물 수탈과 세금 획득을 위한 일거양득 정책이라는 설도 있지만 말이다. 불행히 해방 이후에도 우리의 먹거리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1970년대 ‘통일벼’라는 품종의 등장 이후 밀주 단속이 허술해진 것을 보면 그제서야 먹고살 만해진 듯하다.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들도 서서히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하루 세 끼를 먹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조선 초기 성균관의 기록을 보면 식사를 하는 것을 출석으로 갈음했다고 한다. 당시 식사는 아침과 저녁 두 끼밖에 없었다. 조선 중기 김홍도의 ‘점심’이라는 민속화의 등장이 이 땅에서 하루 세 끼를 먹었다는 최초의 증거다. 마음에 점을 찍듯 가볍게 먹는다는 의미로 중국에서는 이 한자를 ‘딤섬’이라 읽는다.



지난 반세기 대한민국에서 간을 치료하는 의사들에게는 작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다. 이 땅에서 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한때 유병률이 10%에 육박했던 B형 간염이 조기 검진과 예방 사업으로 3% 아래로 떨어졌다. C형 간염도 21세기 들어 신약이 개발되며 치료의 방침이 잡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빈 자리를 술과 음식이 차지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간 질환의 주인공이 바이러스성 간염이었다면 21세기 한국을 비롯해 소위 잘사는 나라에서는 많이 먹어 생기는 병이 주인공이 됐다. 의학적으로는 알코올성 간 질환 또는 대사성 간 질환이라고 부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대사 질환을 극복하고 예방하기 위해 사람들은 옛날로 돌아가고 있다. 일제강점기처럼 술을 마시지 말라거나 세 끼 먹는 시대에 하루 한 끼를 주장하는 식이다. 맛을 위해 잘 도정하던 쌀을 버리고 소화가 덜 되는 거친 현미를 먹기도 한다. 이러한 지침들은 간이 아픈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뿐 약간의 지방간 정도만 있는 대부분의 건강한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루 두 끼를 겨우 먹던 시대의 평균수명은 40세에 불과했고 지금은 80세를 넘어 90세의 여명을 기대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마냥 틀린 말은 아니다. 편안한 친구, 가족과 맛있게 먹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즐겁게 술 한잔을 하는 것. 시대가 만들어준 선물일 수 있다. 아프지 않다면 이 정도 선물은 기꺼이 받으시라. 식단에 대한 지나친 관리가 당신의 간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과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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