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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로 장기기증 동의했는데…병원비 폭탄에 가족들 주저

[이어진 숨, 피어난 삶]

■'수급 불균형' 연명의료결정법의 역설

뇌사 장기기증 2016년 정점 찍고 하락세

연명치료 중단…잠재뇌사 기증 기회 박탈

"국가가 치료비 부담토록 제도 손질해야"


장기 기증자와 장기이식자의 수급 불균형은 처참한 수준이다. 정부가 법을 개정하고 다양한 지원 활동을 벌여왔지만 최근 10년간 연간 장기 기증자가 35%나 급감했다.

20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2025년 뇌사 장기 기증자는 370명으로 전년 397명 대비 6.8%(27명) 줄었다. 2024년에 2011년(368명) 이후 처음으로 300명대로 내려앉은 데 이어 기증자가 더 감소하면서 14년 전 수준으로 후퇴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2000년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을 제정하면서 뇌사 장기이식을 법제화하고 질병관리본부 산하에 장기이식관리센터를 설립하면서 장기 매매 등을 금지했다. 2005년(91명)까지 100명을 밑돌았던 국내 장기 기증자는 2011년 장기 구득 기관의 법적 근거와 뇌사 추정자 발생 시 장기 구득 기관으로 통보하는 조항을 골자로 하는 장기법 개정을 계기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2016년 573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림세를 지속하더니 10년 새 35.4%나 줄었다. 뇌사 장기 기증이 급감한 배경에는 인체 훼손에 대한 두려움, 뇌사에 대한 이해 부족 등 고질적인 문제 외에도 코로나19 팬데믹과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 공백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자리한다.

특히 현장 의료진들은 2018년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의 역설’을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거부하거나 중단함으로써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도입됐다. 지난해 말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가 320만여 명에 달할 정도로 많이 알려졌고 실제 연명 의료 중단 결정이 이뤄진 사례도 꾸준히 늘고 있다. 연명 의료 중단을 등록한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가 잠재적으로 뇌사가 확실시될 경우 뇌사에 이르기 전 합법적으로 ‘치료 중단’을 요구할 수 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연명 치료를 중단하면 통상 30분 이내에 사망한다. 환자가 생전에 장기 기증 희망 등록을 하지 않았거나 유가족이 반대하면 뇌사 판정을 위한 절차로 넘어갈 수가 없다. 장기 기증 기회도 사라진다. 존엄한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역설적으로 잠재 뇌사자의 장기 기증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뇌사 판정 절차. 사진 제공=대한중환자의학회


연명의료결정법 제도 설계에도 맹점이 있다.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하고 의사가 사망 선언을 하는 순간부터 환자 가족은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 등 치료비 부담에서 즉시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뇌사 장기 기증’에 동의하면 상황이 180도 달라진다. 정부가 장기법 제32조에 의거해 유가족에게 장제비 및 진료비 명목으로 최대 540만 원을 지급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실제 기증이 이뤄진 경우에 한해서다. 기증자의 갑작스러운 상태 악화, 의학적 부적합 사유 등으로 이식이 완료되지 않으면 장제비(360만 원)만 지급된다.

이재명 고대안암병원 중환자외과 교수가 뇌사 판정 절차와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고대안암병원


이재명 고대안암병원 중환자외과 교수는 “장기 기증에 동의해도 통상 1차 뇌사 조사를 통과한 날의 밤 0시부터 발생한 의료비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이 부담한다”며 “잠재 뇌사자가 기증 동의를 해도 1차 뇌사 조사를 통과할 때까지 뇌파 검사나 환자의 생체 징후를 유지하기 위한 의학적 관리 비용은 가족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나마도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는 ‘정액제’ 방식이라 관련 절차가 길어지면 지원금이 실제 발생 비용에 턱없이 모자라기도 한다. 대한중환자의학회에 따르면 뇌사 추정 통보 후 뇌사 판정 기준에 미달돼 기증이 무산된 경우가 약 15.5%, 절차를 기다리다 환자가 사망(심정지)해 실패한 경우는 9.9%(802건)였다. 누군가를 살릴 수 있었던 장기 중 상당수가 허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선의로 기증을 결심한 환자 가족에게 경제적 불이익을 지우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며 “뇌사 판정 절차를 유연하게 완화하고 기증 과정에서 발생하는 치료비 부담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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