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발주한 설비 장치 입찰에서 6700억 원대 담합을 벌인 대기업과 관련 임직원들이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담합으로 발생한 부당이득이 1600억 원에 달하고 그 부담이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국민에게 전가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효성중공업·현대일렉트릭·LS일렉트릭·일진전기 등 4개사 임직원 4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20일 밝혔다. 검찰은 담합에 가담한 중소기업군 8개사와 해당 임직원 7명도 불구속기소했다. 이 사건으로 법인과 개인을 합쳐 19명이 재판에 서게 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5년 3월부터 2022년 9월까지 한전이 발주한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입찰 145건에서 사전에 낙찰자와 투찰 가격을 합의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제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가스절연개폐장치 시장의 약 90%를 점유한 이들 업체가 회사별로 낙찰 물량을 배분한 뒤 투찰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총 6776억 원 규모의 담합을 벌였고 이를 통해 최소 1600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 조사 결과 업체들은 시장 지위와 점유율을 기준으로 대기업군과 중소기업군으로 나눈 뒤 입찰 배정 비율을 정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방식으로 7년 6개월간 비정상적으로 높은 낙찰률을 유지하면서 낙찰가를 끌어올렸고 그 결과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는 등 국민 부담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담합 기간 평균 낙찰률은 96%로, 담합 종료 이후 평균 낙찰률(67%)보다 약 30%포인트 높았다.
담합을 주도한 대기업 4곳은 과거에도 유사한 담합 행위로 여러 차례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당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등 행정처분에 그치면서 제재의 실효성이 충분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장기간에 걸친 조직적 담합이 반복됐다고 보고 있다. 이들 기업은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에 대해서도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책임을 다퉈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사건은 공정위의 행정조사를 토대로 검찰이 보완수사에 나선 사례다. 공정위는 지난해 1월부터 담합에 연루된 업체들을 순차적으로 고발했지만 담합 실행을 주도한 의혹을 받던 대기업 임직원들은 고발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후 검찰은 같은 해 10월 강제수사에 착수해 약 3개월간 수사를 벌인 끝에 대기업군 임직원 주도로 관련 업체 전반이 담합에 가담한 사실을 추가로 확인하고 공정위에 세 차례에 걸쳐 고발을 요청했다.
검찰은 주요 피의자들이 구속되고 공정위 등 유관기관과의 협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만큼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가 한국전력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포함한 향후 민사·행정소송에서도 폭넓게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피의자 기업들이 과징금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황에서 핵심 인물들의 구속과 관련 진술·증거가 보강되면서 정부가 소송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전 역시 담합에 가담한 업체들을 상대로 약 20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담합은 시장 경쟁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대표적인 경제범죄로 꼽힌다. 검찰은 공정거래 분야 전반에 대해 엄정한 대응 기조를 이어가는 한편 한전 입찰 담합 사건과 별도로 밀가루 담합 의혹 등 다른 공정거래 위반 사안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에서는 올해 10월로 예정된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출범 이후에도 공정거래처럼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에서는 전담 수사부서의 기능과 수사 역량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지검 관계자는 “국민 경제와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담합 범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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