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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예민한 국경 파수꾼, 탐지견 [로터리]

이명구 관세청장





길었던 하루 끝에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세차게 흔들리는 꼬리와 눅눅한 코끝의 온기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피곤한지 즐거운지. 말 대신 코로 묻는 반려견과 살다 보면 냄새는 누군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작은 단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한민국 국경의 최전선에도 그런 단서를 놓치지 않는 코끝이 있다. 공항과 항만에서 사람과 화물이 뒤섞인 거대한 냄새의 파도를 묵묵히 훑는 마약 탐지견이다.

마약 밀수 수법은 해마다 더 교묘해진다. 진공 포장은 물론 커피 가루로 위장하거나 향수로 냄새를 덮기까지 한다. 이렇게 스며든 마약은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할 뿐 아니라 가족을 무너뜨리고 공동체의 안전을 갉아먹는다. 이때 등장하는 든든한 파수꾼이 바로 마약 탐지견이다. 탐지견은 사람보다 약 40배 많은 후각세포를 갖고 있으며 뇌의 33%가 후각 처리에 집중돼 있다. 수영장 20개를 채울 만큼의 물속에서도 단 한 방울의 미세한 성분을 골라내는 이들의 능력은 인공지능(AI) 분석이나 X레이 장비가 미처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메운다. 그래서 탐지견은 그 존재 자체로 밀수 시도를 꺾는 강력한 심리적 저지선이 된다.

이 코끝의 역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마약 탐지견의 역사는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관세 당국으로부터 폭발물 탐지견 6마리를 기증받은 것이 출발점이었다. 관세청은 기증받은 탐지견을 1990년부터 마약 탐지 임무로 전환해 운용했고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에 맞춰 영종도에 탐지견 훈련센터를 건립해 체계적인 양성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탐지견 훈련센터는 2021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탐지견훈련기구(RDTC)로 지정되며 역내 관세 당국의 탐지견 양성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2023년에는 자체 육성한 마약 탐지견을 태국에 기증하며 탐지견 수혜국에서 ‘탐지견 강국’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제 K탐지견은 국경을 넘어 국제 공조의 연결 고리가 되고 있다. 마약 밀수는 단속이 강한 곳을 피해 느슨한 경로로 이동하는 전형적인 초국가 범죄다. 전 세계 마약 차단망 중 어느 지점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곧 전체의 위험으로 번진다. 정보와 기술·인력의 공유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이유다. 탐지견 기증은 마약에 함께 맞서자는 약속을 가장 실질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2025년 12월 북마케도니아에 기증한 탐지견이 최근 현지에서 코카인 10㎏을 적발한 것은 협력이 문서에 머무르지 않고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음을 확인시켰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전제는 탐지견이 ‘장비’가 아닌 ‘생명’이라는 점이다. 탐지견 한 마리는 현장에 투입되기까지 약 14개월의 훈련을 거친다. 그 시간 동안 필요한 것은 기술 습득만이 아니다. 핸들러와의 깊은 신뢰 그리고 컨디션을 세심히 살피는 돌봄이 함께 쌓여야 한다. 탐지견은 관세청의 소중한 가족이며 국민 안전을 함께 책임지는 동료다. 현장에서의 복지는 물론 임무를 마치고 은퇴하는 탐지견이 평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 또한 중요한 책무다.

지난해 관세청 유튜브의 탐지견 콘텐츠 ‘킁킁로그’가 국민께 큰 사랑을 받았다. 마약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바라는 간절함, 묵묵히 헌신하는 존재를 향한 고마움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그 따뜻한 응원을 잊지 않고 탐지견이 건강하게 일하고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이어가겠다. 보이지 않는 위험을 냄새로 읽어내는 그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국경은 오늘도 한 겹 더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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