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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키운 '대형마트 때리기'…국회는 갈팡질팡[법안 돋보기]

대형마트 규제 10여년…오프라인 유통 위기로

줄폐점·고용 감소에 '영업 제한 완화법' 잇따라

"소상공인 보호 필요성 여전" 규제 고집한 여권

서울 시내에 있는 홈플러스의 모습. 뉴스1




“의무휴무제를 지키지 않는 대형 유통업체들은 하루 매출의 100배에 달하는 무거운 과징금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

2012년 18대 대선 때 민주통합당 후보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골목상권을 지키겠다며 대형마트에 대한 대대적인 칼질을 예고했습니다. 재래시장과 소상공인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은 너도나도 사세를 빠르게 키워나가던 대형마트를 ‘악의 축’으로 몰고 갔습니다. 선거를 앞둔 그 해 12월 중순까지 국회에 올라온 대형마트 규제 강화 관련 법안만 무려 20여 건에 달할 정도였죠.

“골목상권 보호” 구호 속 고꾸라진 대형마트


이렇듯 여야 할 것 없이 ‘유통 공룡 때리기’ 법안을 밀어붙이면서 각종 규제가 곧장 적용됐습니다. 대표적인 법안으로는 2012년 3월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있습니다. 대형마트는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영업할 수 없도록 하고, 매월 이틀은 강제로 문을 닫도록 했습니다. 대형마트의 영업 규제가 전통시장에 매출 확대로 이어지고, 근로자들의 휴식을 보장한다는 미명 하에 추진된 법안이죠. 이듬해 영업제한 시간은 오전 10시까지로 연장됐고, 과태료도 현행 3000만원에서 1억 원으로 상향 조정됐습니다. “골목상권을 보호하자”는 구호 아래서 말이죠.

이후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과연 대형마트 규제법은 전통시장 살리기에 일조했을까요? 다수 연구 조사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 결과(2022년 통계 기준)에 따르면 대형마트가 영업하는 일요일에 전통시장의 평균 식료품 구매액은 630만 원인데, 의무 휴업일(일요일) 때 구매액은 610만 원으로 되레 줄었습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를 봐도 ‘대형마트 주말 의무휴업제’를 주중 휴업으로 바꾼 지자체인 대구시와 충북 청주시의 마트 주변 상권에서 주말 평균 매출이 3.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석운 과로사대책위 공동대표(앞줄 오른쪽 세번째)가 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와 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에서 쿠팡 택배노동자 설 연휴 휴식권 보장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골목상권과 대형마트 모두 매출액이 줄어들었단 얘기인데, 소비자들의 선택은 어디로 향한 것일까요? 답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온라인 이커머스(전자상거래)였습니다. 유통업계와 한국체인스토어협회에 따르면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주요 대형마트 3사의 매출 합계는 2024년 28조6200억 원으로, 같은 해 관련 업계 1위인 쿠팡의 매출액(41조2900억 원)에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온라인쇼핑 플랫폼이 오프라인 매장을 대체하자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2022∼2024년 기준 대형마트 3사 임직원은 4377명 줄었습니다. 파산 위기에 몰린 업계 2위 홈플러스가 대대적인 점포 폐점과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고용은 올해 더 감소할 전망입니다. 그럼에도 지난해 11월 국회는 대형마트 영업 규제를 4년 더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제라도 풀어야” 정치권도 규제 완화 목소리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정치권도 유통업체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고용률 감소로 되레 지역 경제의 악영향을 미치는 유통 규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따라서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불편하고, 그 혜택이 전통시장에 돌아가기는커녕 규제 사각지대 속에 이커머스의 배만 부르게 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야당을 중심으로 뒤늦게 대형마트 규제완화법을 쏟아냈습니다.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은 준대규모 점포(연면적 3000㎡미만인 대기업직영기업)에 대한 규제는 폐지하고, 대규모점포(연면적 3000㎡이상)에 대한 규제는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같은 당 이종배 의원은 대형마트도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판매를 가능하도록 한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의무휴업일 지정을 통한 영업 규제가 사실상 중소 유통업을 보호하는 목적임을 고려할 때 현행 규제는 그 반사이익이 쿠팡 등 대형 온라인 유통업체로만 쏠리고 있는 현실을 반영했습니다. 강승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공휴일로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도록 한 원칙을 없애고 영업규제 시간에도 온라인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이른바 ‘새벽 배송’을 길을 열어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2026년 1월 임시회 1차 본회의에서 2차 종합특검법을 통과시킨 뒤 본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소상공인 눈치 보는 여권, 되레 ‘옥죄기’ 법안 내놔


반면 “여전히 소상공인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며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도 적지 않습니다. 소상공인연합회 중앙회장 출신인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더 나아가 현행법상 합의로 결정할 수 있는 의무휴업일 지정을 공휴일로 강제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오 의원은 “(대형마트가)일요일에 두 번 쉬었다고 해서 꼭 적자를 보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그들의 입장”이라고 주장하며 법안 통과를 자신했습니다. 같은 당 송재봉 의원과 정혜경 진보당 의원도 근로자의 건강권과 중소유통업과의 상생 발전을 이유로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러한 여권의 규제 일변도 방침에 보수 진영에서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특히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을 불러온 쿠팡 사태와 홈플러스 유동성 위기를 계기로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시기라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대형마트에 묶여 있는 새벽배송의 족쇄를 풀어 공정한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며 “전통시장 보호라는 명분으로 대형마트 영업을 제한했지만 반사이익은 전통시장이 아닌 식자재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이 가져갔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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