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인 레픽 아나돌은 도시와 건축, 미술관의 방대한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학습시켜 작품들을 만들었다. 기계가 기억한 세계를 거대한 시각적 파노라마로 펼쳐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스펙터클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하여 세계 유수 미술관과 전시를 통해 소개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에 비해 트레버 패글렌과 케이트 크로포드의 ‘ImageNet Roulette’는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ImageNetRoulette 로 사진을 올리면 AI가 라벨을 붙이는 방식으로 밀라노의 프라다 재단의 전시 ‘Training Humans’와도 연결되어 주목받았다. AI가 인간을 인식하도록 훈련시키는 데이터와 분류 정치학을 드러내는 사례로 소개된다. ‘AI가 사람을 분류하는 것’의 위험성을 대중이 체감하게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이 두 작업은 방향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AI를 전면에 세운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올려볼 수 있다. 기술이 이렇게까지 전면에 나서는 상황에서 정작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AI가 일상이 되며 우리는 더 빠르게 연결되고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요즘 “훨씬 편해졌는데 마음은 더 피곤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심지어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인지’조차 잠시 멈추지 않으면 진정으로 무언가를 느끼기 어려워진다. 이럴 때 예술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설명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으며 그저 잠시 멈추게 만든다.
그 멈춤의 순간에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LG유플러스의 문화 공간인 ‘일상비일상의틈’은 바로 그런 질문을 조용히 던지게 하는 장소다. ‘보러 가는 공간’으로 규정된 전시장을 일상의 동선 속에서 의도하지 않게 예술과 마주치게 되는 틈으로 만든 것이다. 또한 이해를 요구하기보다 감각을 먼저 열어두는 방식은 지금의 시대와 닮아 있다. 이 공간의 방향은 최근 LG유플러스가 강조해온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이 회사 홍범식 사장은 취임 이후 ‘기술과 서비스가 앞서갈수록 고객이 느끼는 신뢰와 확신, 그리고 일상의 온도가 더 중요해진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왔다. 복잡한 것에 대해 더 설명하기 보다는 외려 덜 고민하게 만드는 선택을 하도록 하고 그 선택이 쌓일수록 조금 더 밝은 세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현재 이 공간에서 준비 중인 전시에서 ‘인간’과 공동으로 주제가 되는 ‘AI’는 작품을 대신 말하지 않고, 작품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도구’로 작동한다. 관람객이 궁금해하는 지점에만 반응하고, 각자의 속도와 관심에 맞게 정보를 건넨다. 기술은 한 발 물러나고, 다시 사람의 감각과 해석이 중심에 놓인다. 이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까지의 AI 예술이 ‘기계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면, 이 공간이 시도하는 것은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묻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예술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이미 지나치고 있던 감각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기술이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시대일수록, 스스로 질문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분명 더 중요한 감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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