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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사르트르에게 경영의 길을 묻다 [정인호의 경영학 수업]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21세기 경영 환경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지형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 불확실성은 더 이상 예외적 변수나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경영 그 자체의 기본 조건이 되었다. 과거에는 정답처럼 여겨지던 전략과 성공 공식이 이제는 빠르게 효력을 상실한다. 오늘날의 조직은 더 이상 안정된 법칙을 찾아 따를 수 없으며 스스로 의미를 재정의하지 않으면 곧 방향을 잃는다.

이 변화 속에서 리더십은 전통적 권위에서 조율과 해석의 역할로 이동하고 있고, 전략은 확고한 계획에서 ‘우리는 왜 이 선택을 하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으로 옮겨가고 있다. 기업은 이제 단순히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단계를 넘어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있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조직은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자원을 갖추고 있어도 쉽게 표류한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20세기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1905~1980년)를 다시 소환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의 철학은 인간 개인의 문제를 넘어 오늘날 조직과 리더십이 마주한 근본적 딜레마를 정면에서 다루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의 사유는 불확실성 속에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존재의 조건을 가장 날카롭게 해부한 철학적 유산이다.

사르트르 철학의 핵심에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급진적인 명제가 있다. 칼이나 펜 같은 사물은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목적과 기능이라는 본질이 규정되어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어떤 고정된 본질도 없이 세상에 던져지고, 이후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간다. 이 명제는 철학적 선언을 넘어 오늘날 경영과 조직을 해석하는 강력한 프레임을 제공한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은 시장이나 기술, 산업 구조라는 조건 속에 놓여 있을 뿐, 처음부터 정해진 본질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혁신 기업이다’, ‘우리는 고객 중심 기업이다’라는 선언은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조건 위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방향을 기획하며, 그 선택을 어떻게 실현해 나가느냐는 조직의 의지다. 이 관점에서 경영전략은 외부 환경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조직이 스스로를 정의해 나가는 실존적 해석의 과정이 된다.

이러한 시각은 인사관리, 즉 HR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그동안의 경영은 사람을 MBTI 유형이나 역량 지표, 성과 등급이라는 틀에 넣고 관리해야 할 ‘인적 자원(Human Resource)’으로 다뤄왔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이는 인간을 고정된 본질로 환원시키는 본질주의적 오류이자 자기기만에 가깝다.



사람은 이미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무엇이 되어가는 중인 존재다. 진정한 경영은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력서 없는 채용으로 유명한 일본의 미라이공업, 자율과 책임을 전제로 조직을 설계한 넷플릭스의 사례가 주는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조직은 개인을 분류하고 통제하는 공간이 아니라, 각자가 의미를 창출하고 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는 ‘인간 실현(Human Realization)’의 무대가 되어야 한다. 구성원의 자유로운 선택이 보장될 때,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창의성과 책임 의식이 살아난다.

리더십 역시 정답이 있는 매뉴얼이 아니다. 많은 리더가 이상적인 리더십 유형을 찾아 자신을 끼워 맞추려 한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를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는 비도덕적 태도로 보았다. 리더가 느끼는 불안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자유로운 주체로서 중요한 결단 앞에 서 있다는 실존적 신호다.

AI가 인간의 판단을 보조하는 시대, 효율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최적의 해’가 늘어날수록 인간의 선택은 오히려 축소될 위험에 놓인다. 중요한 것은 AI가 답을 내놓는 순간이 아니라 그 답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결정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결정의 결과에 책임지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 리더다.

결국 21세기의 경영은 단순한 생존 경쟁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 과정에 가깝다. 경영은 더 이상 이윤 창출이라는 기술적 문제에 머물 수 없다. 그것은 혼돈의 세계 속에서 조직이 왜 존재하는지, 어떤 가치를 선택할 것인지 끊임없이 묻는 철학적 투쟁이다.

사르트르가 펜을 검으로 여겼듯, 오늘날의 리더 역시 자신의 의사결정을 세상을 변형시키는 도구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해진 본질의 굴레를 벗어나 매 순간 스스로를 정의하기 시작할 때, 조직과 개인은 비로소 자유와 지속 가능한 성장의 나침반을 발견한다. 조직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실존해야 한다. 그리고 사르트르의 철학은 그 실존의 여정을 비추는 가장 날카로운 사유의 등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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