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15일 문화예술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편성해서라도 문화예술 토대를 건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세대 간 소통을 높일 문화 관련 정책을 보고 받고 이같이 지시했다고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밝혔습니다.
강 대변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문화 예술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의 수도 너무 적고, 민간 협력도 부족하다”면서 “예산 증가와 민간 투자가 절실하다”고 했습니다.
“‘추경’ 지시 한 것인가”…쏟아진 질문
사실 이날 강 대변인의 브리핑은 취재진 입장에서 마감이 끝나가는 시각인 오후 5시에 열린 데다 오후2시 회의 모두발언이 생중계된 바 있어 상대적으로 긴장도가 크지 않은 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추경”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취재진 상당수는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1월 추경 전례가 있었는지부터 문화예술 분야를 대상으로 한 원포인트 추경이 가능한 지까지, 이날 수석보좌관 회의의 주제였던 ‘국민통합과 사회적 갈등 해소’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머릿속에는 추경만 맴도는 수준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브리핑에서 첫 질문은 추경이었고, 가장 많은 질문 역시 추경에 집중됐습니다. 질의응답은 원문을 그대로 옮깁니다.
브리핑 발언중 “추경을 하게 된다면”과 “추경을 통해서라도 조금 더 지원을 해야 되지 않겠냐”는 설명이 혼란스러웠을까요. 다른 기자가 재차 질문을 합니다. 역시 질답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그래도 궁금증이 해소가 안됐는지 그 다음 기자가 “(대통령이)추경 말씀하실 때 혹시 숫자도 대략적으로”라고 질문하자 강 대변인은 “숫자가 나오지는 않았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브리핑 생중계가 종료된 이후에도 기자들은 앞다퉈 대변인에게 재차 추경 지시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정무적인 판단을 통해 강 대변인이 이 대통령의 ‘추경’ 발언은 공개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투명성 강화를 국정철학으로 삼고 있는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강 대변인이 대통령의 추경 언급을 밝히지 않았다면 오히려 질타를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李 대통령 추경 시사 △지방선거 앞두고 추경 △“추경이라도 해야”…왜? △추경해서라도 살려야 등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 잇따라 쏟아졌습니다. 결국 청와대는 브리핑 종료 뒤 약 한 시간 여 후인 오후 6시 59분 별도의 언론 공지를 내고 “문화 예산과 관련한 대통령의 발언은 문화예술계 지원 필요성을 강조한 원론적 취지”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靑 “지원 필요성 강조한 원론적 취지”추가 언론 공지
결론적으로 현재로서는 이 대통령이 당장 추경 편성을 지시한 상황은 아닙니다. 새해 예산 집행이 막 시작되는 1월에 추경을 편성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현실적으로도 가능성이 낮습니다.
실제 추경 편성 요건은 국가재정법상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 침체, 대량 실업이 발생했거나 그 우려가 있을 경우로 한정돼 있습니다. 재난을 이유로 한 추경 편성 사례 역시 많지 않습니다.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재해대책 지원에 4조1000억 원, 2003년 태풍 매미 대응에 3조 원, 2006년 태풍 에위니아와 집중호우 대책으로 2조2000억 원이 편성된 것이 전부입니다.
지난해 상반기 산불 피해 예산이 포함된 13조 8000억 원 규모의 추경 역시 재난 대응보다는 비상계엄 이후 급격히 위축된 경기를 방어하기 위한 성격이 더 강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물론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 이후 지난해까지 28년 동안 추경이 편성되지 않은 해는 2007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4년, 2023년, 2024년 등 불과 일곱 차례에 그칩니다(e-나라지표 기준). 그만큼 예산 편성 과정에서 추경은 이미 상수가 된 지 오래입니다.
특히 민주당 정권의 경우 IMF 외환위기 당시의 김대중 정부나 코로나19 피해 대응에 나섰던 문재인 정부에서 처럼 추경 편성이 더욱 빈번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확장 재정 기조가 뚜렷한 이재명 정부에서, 설령 원론적인 발언이었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추경’ 언급이 여러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지선 앞두고 ‘추경’언급에 해석 분분
그렇다고 해도 지방선거를 겨냥한 ‘추경 군불때기’라는 식의 해석은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실제 여야 간 추경 공방을 떠올려보면, 지금부터 논의가 시작되더라도 6·3 지방선거 이전에 집행이 가능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민생소비쿠폰이 아니라 특정 계층을 겨냥한 문화예술 지원 명목의 추경이라면 선거용일 가능성은 더 낮습니다.
이 대통령은 말 그대로 열악한 문화예술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진정성을 전달하고 지시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개운치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 대통령의 꼼꼼한 성격과 디테일 리더십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생중계된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일 처리에 능숙하고 행정 전반에 밝은 대통령의 모습을 이미 국민 모두가 확인했습니다.
공직사회 움직이게하는 李'디테일 리더십'…창의적 아이디어 소실될라
메시지가 많고 다양한 이슈를 제기하는 것 뿐 아니라, 세부 지시와 이행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는 리더십은 공무원 조직을 분명히 움직이게 만듭니다. 실제로 성남시와 경기도, 나아가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 대통령의 디테일 리더십이 ‘일하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다만 이러한 디테일 리더십이 청와대 참모들과 국무위원들의 적극 행정이나 창의적 판단을 위축시키지는 않을지 우려가 남습니다. 더욱 발랄하고 다양한 적극 행정의 아이디어가 최고 통수권자의 디테일한 지시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날 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문화예술계 지원을 위한 정책 수단을 개발·확보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면, 문화예술지원 방안에 재정을 투입해야하는 추경 대신 보다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늘 정책의 출발점이 됩니다. 특히 ‘추경’처럼 무게가 큰 단어는 의도가 원론에 그쳤다 하더라도 파장을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디테일한 지시로 공직사회를 움직여온 리더십의 힘은 분명하지만, 그 디테일이 참모들의 상상력과 정책적 여지를 좁히지는 않는 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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