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성모성지를 찾는 이들은 세 번 놀란다. 경기도 화성시 한켠 한적한 녹지에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설계로 들어선 대성당의 자태에 한 번 놀라고 전문 공연장이 아닌 종교 시설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의 질에 두 번 놀란다. 추가로 건축 예정인 여러 시설을 설계하고 있는 건축가들의 면면을 보고 눈이 번쩍 뜨인다. 국내외의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빚어내는 위로와 문화의 공간을 아시아 국가의 한 소도시에서 한번에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비현실적일 정도다.
약 10만 평에 달하는 이 땅에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낸 이는 이상각 프란치스코 남양성모성지 전담 신부다. 지난 37년간 성지 조성에만 매달려온 그는 이 과정을 두고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태복음 7장 7절)”라는 구절처럼 구하고, 찾고, 두드린 사람이 바로 이 신부였다.
긴 여정의 출발은 1989년 8월 이 신부가 남양 본당에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화성 남양은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곳으로 한국 천주교 박해사에서도 가장 참혹한 사건의 현장 가운데 하나다. 선교사나 사제가 아닌 이름조차 남지 않은 순교자들이 죽음을 맞은 이곳은 오랫동안 기억 밖에 머물러 있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야 천주교 수원교구가 이 지역을 성지로 조성하는 데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그 일을 젊은 이 신부가 맡았다. 오후 9시만 넘으면 불빛 하나, 인기척 하나 없던 곳에서 그는 변변한 관사도 없이 컨테이너 박스를 놓고 사목과 성지 조성을 시작했다. 1991년 한국천주교는 이곳을 동정 마리아 축일에 성모 마리아께 봉헌하면서 성모성지로 선포했으나 하나부터 열까지 어려운 일 투성이였다.
“처음에는 나무를 심고, 길을 내고, 신자들의 후원으로 조금씩 땅을 사들이는 일을 반복했어요.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 직접 삽을 들고 나무를 구해 옮겨 심기도 했죠. 토지를 확보하고 터를 닦아가는 과정에서 인근 지주들과 마찰이 생겨 경찰 조사를 받고 법정에 서는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도시계획지구 내 종교 시설은 3000평을 넘으면 안 된다는 규제 때문에 잔디 광장 하나 만들 수 없었죠. ‘전과자 신부’가 됐지만 그래도 소명을 받들며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 도시개발법이 정비되면서 법적 문제들이 풀렸다. 땅을 다듬어가며 그는 이곳에 ‘살아 있는 작품’ 같은 성당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러던 중 건축 전문 잡지에서 해외 건축 기행단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건축을 알아야 건축주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건축가들이 떠나는 기행에 동참했고 그 여정에서 처음 알게 된 것이 보타의 건축이었다. 둥근 형태,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은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토지와 관련한 법적 문제는 정리됐지만 ‘세계적인 건축가는 설계비도, 공사비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주변의 만류가 강했다. 남양성모성지 봉헌 20주년을 맞은 2011년에 이 신부는 보타의 사무실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건축가 한만원을 통해 조심스레 연락을 취했다.
그가 건축주로서 내놓은 요구는 많지 않았다. “하느님은 빛이시니 빛으로 충만한 교회, 하느님은 말씀이시니 소리가 좋은 교회, 그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친환경 냉난방 구조. 이 세 가지만 말씀드렸습니다.”
보타는 설계를 수락했고 두 달 만에 드로잉을 보내왔다. 이례적인 속도였다. 그는 다리를 다친 상태에서도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채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 신부가 ‘소리’를 강조한 것은 교회가 종교 시설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는 “소리가 좋으면 사람이 찾아온다”며 “이곳에서 좋은 연주가 이어져 음악을 통해 위로와 치유를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리움미술관과 강남 교보생명타워를 설계한 보타는 프랑스 에브리 대성당,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으로 잘 알려진 거장이다. 그는 “무한한 신앙심 하나로 거대한 모험 앞에 홀로 선 사제”의 열정에 마음을 열었다. 보타는 12차례 설계 변경을 거쳐 교회 내부의 의자부터 첨탑의 종에 이르기까지 성당의 모든 요소를 직접 디자인했다. 붉은 벽돌을 치밀하게 쌓아 올리는 그의 건축 언어도 이곳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곳에서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십자가와 성화를 만날 수 있는 데도 보타의 조력이 있었다. 보타의 소개로 20세기 미켈란젤로라 불리는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가 십자가와 성화를 제작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고통에 짓눌린 모습이 아니라 젊고 생동감 있는 표정으로 성당 안을 바라본다. 죽음이 아닌 삶을 상징하는 형상이다. 이 신부는 “보타는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며 설계비를 실비만 받았고, 반지 역시 재료비 정도만 받고 작품을 보내왔다”며 “신자들의 십시일반 헌금과 거장들의 선의가 모여 기적처럼 세워졌다”고 말했다.
보타는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의 리모델링에도 참여한 ‘음향의 건축가’이기도 하다. 공간의 구조와 소리의 흐름을 세밀하게 고려해 풍부한 울림을 만들어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역시 처음부터 음향 설계사가 건축 과정에 참여했다. 음향 설계를 맡은 정완진 OSD음향 소장은 “클래식 음악을 담을 대성당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사례는 드물다”고 전했다.
이 신부가 클래식 공연을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이크에 의존하지 않고 악기의 공명과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소리를 전달하고 싶어서다.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의 음향은 슈박스형이나 빈야드형 공연장 가운데 빈야드형에 가까운 확장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남양성모성지 클래식 음악제 음악감독인 조희창 음악평론가는 “난롯가에서 듣는 어쿠스틱 LP판 같은 따뜻한 음색을 지닌 공간”이라고 말한다.
남양성모성지는 최근 클래식 팬들 사이에서 ‘음악 성지’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지난해 12월 열린 클래식 음악제에서는 바흐의 B단조 미사가 연주됐고 앞서 바리톤 사무엘 윤과 피아니스트 손민수도 이곳 무대에 섰다.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리사이틀은 개인사와 얽힌 감정과 천재적인 연주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곳에서는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눈물 흘리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음악가들 사이에서 분위기와 소리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며 공연 문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는 프로그램이 한층 다채로워진다. 3월에는 피아니스트 박종훈이 리스트 ‘순례의 해’를 연주하고 4월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베토벤 ‘운명’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피아니스트 손정범과 함께 들려준다. 정식 오케스트라가 이곳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5월에는 트럼펫 연주자 성재창이 이끄는 SNU브라스 소사이어티가 금관 앙상블을 선보이며 6월에는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9월 국내 초연되는 주페의 레퀴엠은 음악팬들의 관심이 뜨거울 것으로 예상된다.
공연이 많아지는 만큼 운영 체계도 갖췄다. 올해부터는 대관 심사위원회를 통해 공연 성격과 취지에 맞는 무대를 선별한다. 이 신부는 “영리 목적의 공간이 아닌 만큼 이곳에 어울리는 품위와 실력을 갖춘 연주자들이 서길 바란다”며 “예능 위주의 흐름 속에서도 진지한 음악이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건넬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남양성모성지는 아직 미완이다. 승효상 건축가의 ‘순교자의 언덕’,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의 채플올해 착공될 계획이다. 젊은 건축가 이동준의 성 요셉 예술원은 마무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숱한 막막함을 지나 여기까지 온 그는 “신앙의 힘으로 산을 가로지르고 강을 건너 왔다”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 “계획대로 건축이 끝나면 한국의 작은 도시에서 세계적인 건축과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할 것”이라며 “성지와 교회가 종교인은 만의 공간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화의 거점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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