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 이권 확보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미국 기업이 아닌 네덜란드·싱가포르계 기업들이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출 기회를 선점했다.
12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에너지 무역 기업인 네덜란드의 비톨과 싱가포르의 트라피구라가 미국 정부로부터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운송·판매하는 사업을 수주했다. 비톨과 트라피구라는 이에 따라 베네수엘라 원유 수급 협상과 수출에 관해 임시 특별 라이선스를 취득했고, 이중 트라피구라는 이번 주에 첫 원유를 선적할 예정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번 원유 판매 대금은 미국 당국의 은행 계좌로 입금되며, 델시 로드리게스 권한대행이 이끄는 베네수엘라 과도 정부 측이 당장 필요한 국정 자금으로도 쓰일 수 있을 전망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비톨과 트라피구라가 이번 주 최소 480만배럴의 원유를 받아 이를 카리브해 섬나라인 네덜란드령 퀴라소와 바하마의 보관 탱크에 옮길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 보관 시설은 미국 남부 걸프 연안의 정유 기업들과 가깝고, 유럽과 아시아로 가는 항로 근처에 위치한다. 비톨과 트라피구라는 미국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주의 석유 업체에 원유를 판매하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제 유가 기준점인 브렌트유 대비 배럴당 6.50달러의 디스카운트(할인)가 적용된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베네수엘라 원유와 성분이 유사한 경쟁재인 캐나다산 원유 가격(브렌트유 대비 12달러 디스카운트)보다는 높은 수준이며, 이번 판매가 베네수엘라 원유에 대한 실제 시장 수요를 가늠할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비톨과 트라피구라는 또 3월 인도분 원유를 인도와 중국의 정유 회사에 판매하는 협의도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 회사의 베네수엘라 원유 사업 수주는 미국 대형 석유 기업들이 여러 리스크를 이유로 베네수엘라 진출을 주저하는 가운데 성사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백악관에서 엑손모빌,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등 주요 석유사 임원들과 만나 “훌륭한 미국 기업들이 황폐해진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을 얼마나 빠르게 재건할 수 있을지, 어떻게 원유 생산을 수백만 배럴 늘려 미국과 베네수엘라 국민, 전 세계에 도움이 되게 할지를 논의하려고 한다”며 베네수엘라 진출을 독려했다.
하지만 대런 우즈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는 베네수엘라를 ‘투자 불가능한 나라’라고 칭하면서 “우리는 베네수엘라에서 두 차례 자산을 몰수당했다. 그래서 세 번째로 재진출하려면 우리가 역사적으로 봐온 것과는 상당히 다른 중대한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가 매력적인 투자 기회가 되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며 “지속 가능한 투자 보호 장치가 도입돼야 하며 베네수엘라의 탄화수소법도 개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는 1500억달러(약 221조3000억 원)가 넘는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어 채권자들이 석유 기업들의 초기 원유 대금을 압류하는 법적 조처를 할 위험이 크다. 또 미국 당국이 이미 제재 대상에 올린 베네수엘라 유조선을 이용해 원유 거래를 할 경우 여러 법적·규제적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미국 석유 업계의 주요 투자처인 중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통제에 강력 반발하는 것도 큰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고 로이터는 짚었다.
과거 베네수엘라에 투자했던 엑슨모빌, 코노코필립스 등은 2007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석유산업 국유화 선언 이후 투자한 자산을 몰수당한 뒤 현지에서 철수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셰브론만 베네수엘라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sepys@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