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반응은 극명히 엇갈린다.
그럼에도 주권국의 현직 대통령을 무력으로 체포해 연행한 행위는 유엔 헌장 제2조 제4항이 금지하는 무력 사용과 주권 침해에 해당하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간 마두로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독재적 통치, 각종 범죄 연루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국제사회의 기본 규범을 무너뜨리는 수단까지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특히 브라질·멕시코·콜롬비아를 비롯한 다수의 중남미 국가는 이번 사태를 국제법 위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베네수엘라 장기 독재의 종식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사태는 어느 한쪽의 논리만으로 재단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질문을 국제사회에 던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위기의 중심에는 사람의 삶이 놓여있다. 중남미 여러 나라의 거리에서 수많은 베네수엘라 사람들을 직접 본 결과, 시장과 버스터미널, 국경 인근에서 만난 이들은 정치 구호를 외치지 않았다. 대신 ‘돌아갈 수 없는 나라’에 대해 말하며 슬픔과 체념을 토로했다. 의사와 교사, 기술자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불안정한 일용직과 노점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었다. 이 장면은 국가의 붕괴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잠식해 가는지를 통계가 아닌 현실로 보여주었다.
이 지점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 권력이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채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750만 명을 굶주림과 절망 속에서 타국으로 내몰았음에도 그 체제는 여전히 ‘주권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아야 하는가? 선거라는 형식은 유지되지만 결과를 왜곡하며 장기 집권을 이어 가는 체제를 국제법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해 온 태도는 과연 중립이었는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출신으로 지난해 노벨 평화상을 받은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미국이 개입해서라도 자국민에게 민주주의와 자유를 되돌려 줘야 한다”고 호소한 바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민주와 자유가 사실상 붕괴된 상황을 방치하는 것이 과연 더 도덕적인 선택인지에 대해 묻는 것이다.
실제 베네수엘라에서 독재 정권을 계속 방치했다면 세계는 어떤 모습이 됐을까? 독재 정권이 수십 년씩 지속되고 이들과 연대한 부패한 정치·범죄 집단들이 국경을 넘어 서로 연결된다면 이는 더 이상 한 나라의 비극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악은 고립될 때보다 연결될 때 훨씬 빠르게 확산한다. 오늘의 내정 문제는 내일의 국제 문제가 되고 방치는 결국 더 큰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그렇다면 미국의 직접 개입 이전까지 중남미 국가들은 무엇을 해왔는가? 자유와 인권이 체계적으로 유린되는 동안 ‘주권 존중’과 ‘대화 촉구’라는 정치적으로 안전한 언어는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 언어가 실제로 굶주림을 막았는지, 탈출을 줄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렵다.
물론 콜롬비아·페루·브라질 등 다수의 중남미 국가는 수백만 명의 베네수엘라 탈주민을 받아들이며 삶의 터전을 제공해 왔다. 이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고 각국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담도 컸다. 다만 이들은 고통의 결과를 나누는 데에는 연대했지만 그 원인을 바꾸기 위한 결단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미국의 이번 베네수엘라 내정 간섭은 국제사회에서 스스로를 ‘무소불위’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이제 관건은 그 다음이다. 만약 미국이 조기에 베네수엘라 시민들을 전면에 세우고 다자적 관리 체계와 명확한 권한 이양 및 철수 로드맵, 민생 중심의 가시적 개선 조치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국제 사회에서 현재의 유보적 시선은 빠르게 부정적 평가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국제 사회에서는 이번 미국의 군사 개입이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회복과 인권 개선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기보다는 현지의 엄청난 원유를 포함한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라는 의문을 품는 시각도 많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된다면 논의의 초점은 베네수엘라의 독재 종식이나 인권 회복이 아니라 강대국의 이해관계 이슈로 전환되며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미국이 국제법과 주권을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해석했다는 인식이 굳어질수록 국제사회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도덕적 언어로 비판할 정당성도, 중국이 대만을 둘러싸고 무력 행동에 나설 경우 이를 규범의 언어로 제어할 명분도 각각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규범이 흔들리는 순간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강대국이 아니라 중소국과 약자다. 안정적 국제 질서는 강자의 일방적 선언이 아니라 일관성과 절제된 행동을 통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태의 성패는 워싱턴이 아니라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영향력 못지 않게 베네수엘라인들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면서 본인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새 질서를 만들어가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의 역할은 자국 이익에 경도된 방식의 강압적 통치가 아니라 베네수엘라의 자유와 민주를 회복하는 조력자에 머물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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