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조용히 성금을 남기고 사라지는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2000년부터 시작된 그의 선행은 어느덧 26년째 이어져 누적 성금 11억에 이른다.
지난달 31일 전주시와 연합뉴스에 따르면 전날 오후 3시 43분쯤 노송동 주민센터에 익명의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40~50대로 추정되는 중년 남성은 “근처에 박스를 두었으니 좋은 곳에 써달라”는 짧은 말을 남긴 뒤 전화를 끊었다.
주민센터 직원들이 안내받은 장소로 이동하자 A4 복사용지 상자 안에 현금다발과 돼지저금통, 그리고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편지에는 “2026년에는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합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짧은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상자에 담긴 성금은 5만원권 지폐 묶음 9000만원을 포함해 총 9004만6000원으로 집계됐다. 이번 기부로 ‘얼굴 없는 천사’가 전주에 남긴 누적 성금은 11억3488만2520원에 달하게 됐다. 기부는 올해까지 총 27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이 천사의 선행은 2000년 4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메모와 함께 58만4000원이 담긴 돼지저금통을 놓고 간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매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성금을 기부하면서도 단 한 번도 이름이나 얼굴을 밝히지 않아 ‘얼굴 없는 천사’로 불려 왔다.
기부금은 그동안 노송동 지역의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을 위해 연탄과 쌀, 생활비, 장학금 등으로 사용됐다. 2019년에는 주민센터 인근에 놓아둔 성금 6000여만 원이 도난당했다가 되찾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기부는 단 한 해도 중단되지 않았다.
전주시는 천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노송동 주민센터 일대 도로를 ‘얼굴 없는 천사도로’로 조성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또 숫자 1004(천사)를 상징해 매년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정하고 나눔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 선행은 ‘100년 후 전주의 보물’이라는 의미로 전주시 미래유산에도 지정됐다.
노동식 전주시 얼굴없는천사축제 조직위원장은 “이름도 얼굴도 알리지 않은 채 26년간 이어진 조용한 선행이 매년 깊은 울림을 준다”며 “천사의 나눔이 또 다른 익명 기부를 낳는 ‘천사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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