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부여 왕릉원’ 조성 공사가 한창이었다. 관람객이 몰리면서 편의 시설로 주차장이 필요했고 왕릉원 서쪽이 적당한 지역으로 인식돼 공사가 시작됐다. 당시 논밭이었던 이곳에서는 밭을 갈 때 기와 조각이 나오곤 했다. 국립부여박물관 조사단은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빡빡한 공사 일정 중 겨우 발굴 허가를 얻었다.
조사 결과 이곳은 흔한 절터가 아니라 왕실 사찰임이 드러났다. 운명의 1993년 12월 12일 얼어붙은 땅을 파고 있던 한 조사원이 향로를 발견했다. 이후 국보 중의 국보이자 ‘백제의 숨결’로 불리게 되는 ‘백제금동대향로’였다. 1300여 년 전인 서기 660년 백제가 멸망하기 전후에 땅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향로는 금박이 벗겨졌을 뿐 마치 어제 만든 것처럼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사단 관계자는 “잘못했으면 주차장 콘크리트 바닥 아래에 영원히 잠들어있을 뻔 했다”고 말했다.
발견된 지 32년만에 이제서야 백제금동대향로는 그 이름에 걸맞은 대우를 받게 됐다. 국립부여박물관은 이 국가유산(문화재)만의 전용 전시관인 ‘백제대향로관’ 개관식을 22일 열었다. 하나의 유물만을 대상으로 전시장 전체를 대관한 것은 백제금동대향로가 처음이다. 신영호 국립부여박물관장은 “백제금동대향로를 빛과 소리, 향으로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설명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봉황과 용을 위와 아래 기준으로 삼고 몸체는 신선과 동물, 연주자 등으로 이뤄진 독창적인 조형으로 백제인의 세계관과 사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국보다.
백제대향로관은 지상 3층 규모 건물로 공간 구성에 백제금동대향로의 조형 구조를 반영했다. 완성에는 5년 동안 모두 211억 원이 투입됐다. 1층 입구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 하부의 수중 세계를 모티프로 한 미디어아트를 선보인다. 미디어아트를 감상하며 연결 통로를 지나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수중 세계의 용이 하늘로 솟구쳐오르는 모습을 에스컬레이터로 구현했다.
3층에 오르면 백제금동대향로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전시실 ‘백제금동대향로실’이 나온다. 전시실은 약 77평 규모로 초타원(정사각형과 원의 중간) 형태의 공간이다. 벽체와 모서리를 곡선으로 구성하고 천장에는 직선으로 이뤄진 사각 구조물을 배치했다. 곡선과 직선을 함께 배치한 공간 구성은 조화와 융합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을 전시한 ‘사유의 방’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또 벽체를 따라 마련된 일체형 의자는 관람객이 자리에 앉아 빛이 모아진 자리에서 향로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향로는 62.3㎝의 작은 크기지만 엄청 거대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여기에 소리와 향을 더했다. 향로 뚜껑 위에 표현된 연주자의 악기 구성으로 작곡한 음악이 흐르고 고대 향료를 현대적으로 조향한 향기가 은은하게 퍼진다. 신나현 국립부여박물관 연구사는 “관람객은 백제금동대향로의 미감과 정신 세계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고 소개했다.
향로 자체의 역할인 제사에서 핵심인 향과 소리는 바로 옆 전문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다. 정보 공간 ‘향·음(香·音)’은 백제금동대향로와 관련된 내용을 체험형 콘텐츠로 소개한다. 관람객은 향 기둥 안에 들어가 유향·백단향 등 고대의 향을 맡아볼 수 있다. 향로에 표현된 백제삼현·종적·배소·백제금·북 등 다섯 연주자의 악기 소리를 개별적으로 듣는 음향 체험과 향로 복제품을 만져보는 촉각 체험, 수어를 포함한 영상 콘텐츠도 마련됐다.
휴게 공간 ‘향·유(香·遊)’도 있다. 관람객은 쉬면서 백제금동대향로와 관련된 아카이브 자료를 자유롭게 살펴볼 수 있다. 전망대도 있어 백제의 고도 부여 경관을 바라보며 관람의 여운을 즐길 수 있다. 전망대는 서향인 데 “백마강 위로 지는 일몰이 특히 아름답다”고 박물관 관계자가 귀띔했다.
한편 박물관 측은 전시관 개관에 맞춰 ‘친절하고 아름다운 향로 해설서’라는 이름의 백제금동대향로 관련 책자를 내놓았는데 영문이 함께 씌어 있다. 영문 번역자는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여서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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