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조(20·삼천리)는 올해 필드 안팎에서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이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데일 카네기의 책 ‘자기관리론’에 나오는 구절이다.
최근 경기 성남의 한 실내 골프연습장에서 만난 유현조는 “(통산 상금 1위인) 박민지 언니가 올 초 추천해준 책인데 읽다 보니 너무 좋아서 네댓 번은 읽은 것 같다”며 “(좋아하는 구절을 골프에 대입하면) 직전 홀에 미스를 했어도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바로 지금 상황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화를 내봤자 바뀌는 것은 없음을 스스로에게 계속 상기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상(MVP)과 최소타수상이다. 신인상 이듬해 대상 수상은 신지애·김효주·이정은6·최혜진 등 한국 간판 선수들만 이룬 진기록이다. 60타대(69.93타) 최소타수상은 4년 만의 기록. 톱10 진입은 65.5%(19/29)로 2위와 무려 21%포인트 차이다. 우승이 한 번뿐이라고는 하지만 그 1승이 메이저 대회 KB금융 스타챔피언십 2연패다. 신인이 메이저를 우승하고 다음 해에도 같은 대회를 제패한 것은 투어 사상 유현조가 처음. 바로 전 주에 치른 대회에서 연장 끝에 아쉽게 공동 2위를 하고는 “메이저에서 반드시 해낸다”고 했는데 진짜로 바로 다음 주에 우승이 나왔다.
네 살 때 놀이로 골프를 시작한 유현조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스크린골프장에서 역시 놀면서 기량을 키웠다. 이번 ‘역대급 2관왕’에 할머니가 특히 기특해 했다고.
2년간 컷 탈락이 세 번뿐일 정도로 ‘꾸준함의 아이콘’이 된 데는 절제와 습관의 힘이 컸다. 유현조는 “빵을 되게 좋아하는데 뭔가 좀 독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우승 나오기까지 빵을 끊었었다”고 털어놓았다. 3월부터 6개월 동안 햄버거, 샌드위치 등도 먹지 않았다. “해낸 다음에 먹어야 한다고 다그치면서 버텼다”고 한다. 우승 뒤 처음 먹은 빵은 에그타르트.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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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조를 고교 때부터 4년째 지도하고 있는 권기택 코치는 “면역력과 회복력이 탁월하다. 한 번에 쓰는 힘도 좋지만 골프 선수로서 1년을 꾸준히 칠 수 있는 체력이 특히 좋다”고 했다. 경기가 없는 월·화요일은 무조건 체력 운동을 하고 대회 때도 저강도 운동을 빼 먹지 않은 유현조다. 주니어 때부터 오후 9시면 눕는 수면 습관이 몸에 밴 것도 영향이 있는 듯하다. 코로나19 대유행 때도 유현조는 감염을 피했다. 그는 “우승권에 들어간 대회가 작년에 비해 되게 많다 보니 정신적인 부담이 쌓였고, 그게 체력에도 영향을 줬는지 작년보다는 힘든 한 해였다”고 돌아봤다.
올해 남긴 ‘숫자’들 중 ‘내가 봐도 이건 좀 대단하다’ 하는 것은 69.93(평균 타수)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힘은 업그레이드된 퍼트에서 나왔다. 그린 적중 때 퍼트 성공이 27%로 전체 7위다. “샷 연습보다 퍼트 연습이 재밌다”는 유현조는 “두 발짝 거리의 짧은 퍼트 연습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는 편이다. 홀 주변으로 동그랗게 티를 8개 꽂고 각 지점의 8개 퍼트가 연속으로 다 들어갈 때까지 연습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린에서는 다른 사람이 말도 못 걸 정도의 아우라를 보여야 한다”는 권 코치의 말을 떠올리며 연습 그린을 뜨겁게 달궜다. 대회 연습 라운드를 거르고 연습 그린을 지킨 적도 여러 번이다.
다음 달 초 두바이로 겨울 훈련을 떠나는 유현조는 다양한 구질 연습에 집중할 계획이다. 3년 차 키워드를 ‘다재다능’이라고 잡았기 때문이다. “올해를 한 줄로 정리하자면 ‘2년 차 징크스 따위는 없다’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년은 플레이도 그렇고 여러 면으로 잘하고 싶어요. 플레이 외적으로 인성이나 인터뷰 쪽으로도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도 최대한 많이 나가볼 생각이다. 올해 처음 나간 최고 메이저 US 여자오픈에서 컷을 통과하고 공동 36위에 이름을 올렸다. 유현조는 “실수를 많이 했지만 그만큼 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편으로 많이 한 경험이었다”고 돌아봤다. 내년 퀄리파잉(Q) 시리즈에 응시할 거냐는 물음에는 “그럴 수도”라며 눈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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