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연극 스타’인 배우 윤석화가 19일 뇌종양 투병 중 별세했다. 향년 69세.
연극계에 따르면 윤석화는 이날 오전 9시 54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유족과 측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22년 7월 연극 ‘햄릿’ 이후 그해 10월 악성 뇌종양 수술을 받아 투병해 왔다. 투병 사실을 공개한 뒤 2023년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연극 ‘토카타’에 5분가량 우정 출연한 것이 마지막 무대가 됐다.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석화는 1975년 민중극단의 연극 ‘꿀맛’으로 데뷔했다. 이후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은 1982년 실험극장에서 초연된 연극 ‘신의 아그네스’였다. 당시 미국 뉴욕에서 유학 중이던 윤석화는 번역과 주인공 아그네스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면서 당시 국내 연극계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웠다. 또 단일 공연으로 관객 6만 5000명을 동원하며 당시 불황이었던 연극계에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83년 제1회 여성동아대상을 받는 등 20대 후반의 나이에 단숨에 ‘연극계 슈퍼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고인은 1992년 산울림극장에서 초연한 1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비롯해 ‘마스터 클래스’ ‘덕혜옹주’ 등 수많은 연극에 출연해 ‘스타 연극배우’로서의 명성을 이어갔다. 2016년 ‘햄릿’에서는 예순의 나이로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연극 외에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1994년)’과 ‘명성황후(1995년)’,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2018년)’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에 대한 수식어로 ‘스타’가 빠지지 않는다. 연극배우로는 드물게 방송 출연을 비롯해 광고에도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얻었다. 그는 커피 CF에 출연해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예요’라는 대사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고인은 연극 제작과 연출 분야에도 진출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2년 서울 대학로에 건축가 장윤규와 함께 개관한 소극장 ‘정미소’는 실험적 연극의 산실로 꼽힌다. 2019년 만성적인 경영난으로 문을 닫기까지 ‘19 그리고 80’ ‘위트’ 등을 공연하며 신선한 작품들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등 연극계를 이끌었다.
또 그는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연출했고 직접 제작에 참여한 ‘톱 해트’는 영국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1995년 종합 엔터테인먼트사 돌꽃컴퍼니를 설립해 만화영화 ‘홍길동 95’를 제작했고 1999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공연예술계 월간지 ‘객석’을 인수해 발행인으로 활동했다.
윤석화는 2022년 10월 악성 뇌종양 수술을 받은 뒤 투병하면서도 무대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2023년 투병 중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공연장에 가서 공연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3시간이 넘는 공연을 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해야 다시 공연도 하고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와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을 네 차례 받았고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 이해랑 연극상 등을 받았다. 2005년에는 입양 문화 활성화를 위해 적극 활동하면서 국내 입양 풍토를 공개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03년과 2007년 각각 아들과 딸을 입양하기도 했다. 또 2009년에는 연극·무용 부문에서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았다.
고인의 별세 소식에 연극·뮤지컬계 동료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와 ‘세자매’ 등에 고인과 함께 출연하며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배우 손숙은 “후배를 먼저 보낸 선배로서 할 말이 없다. 너무 참담하다”고 애통해했다. 뮤지컬계 대표 배우인 남경주는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하고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며 “누나가 객석을 인수해 발행인으로 활동한 덕분에 연극계나 뮤지컬계 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석기 전 중앙종합금융 대표와 아들·딸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21일 오전 9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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