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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기관차 다음 타자는…“전기차 아닌 하이브리드”[북스&]

■엔진 너머의 미래 (안병기 지음, 흐름출판 펴냄)

19세기 처음 등장했던 전기차

테슬라 성장세에 급부상했지만

‘캐즘’에 빠져 판매 증가율 뒷걸음

하이브리드 집중한 도요타 독주

K자동차, 전기차 시대 준비하되

하이브리드엔진 개발 병행 필요







전기차는 최근 급부상한 첨단 기술 차량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그 역사는 자동차 산업의 출발점과 맞닿아 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운행되던 자동차 가운데 약 38%가 전기차였다. 40% 비중을 차지한 증기기관 자동차와 함께 도로를 양분했다. 석유 재벌 존 록펠러는 자신과 부인을 위해 두 대의 전기차를 굴렸고, 토마스 에디슨은 물론 헨리 포드의 부인 클라라 포드 역시 전기차를 자가용으로 탔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포드가 대량생산 체계를 앞세운 ‘모델 T’를 내놓으면서 판도는 급변했다. 내연기관 자동차 가격이 획기적으로 낮아졌고, 충전 인프라 부족과 긴 충전 시간이라는 약점까지 겹치며 전기차는 빠르게 주류에서 밀려났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자동차 산업의 권력 지도는 끊임없이 바뀌어왔다. 지금의 상황은 다양한 기술과 기업이 난립하던 19세기 말과 닮아 있다. 당시 미국에는 전기차, 내연기관차, 증기기관차를 만드는 수많은 업체가 공존했다. 그러나 포드의 ‘모델 T’라는 게임체인저가 등장하며 시장은 급격히 재편됐다. 지금의 글로벌 자동차 시장 역시 머지않아 비슷한 변곡점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Trouve built the first electric car but soon turned to electric boats and medical devices.


‘엔진 너머의 미래’는 이러한 현재 진행형 자동차 전쟁의 현주소와 향후 주도권 변화를 짚는다. 저자 안병기는 삼성SDI 부사장 겸 상근 고문으로, 한국인 최초로 미국 빅3 완성차 기업 스텔란티스 부사장을 지낸 자동차·전동화 분야 전문가다. 현대자동차 연료전지개발실장과 현대모비스 전동화 비즈니스 유닛 본부장을 거치며 수소차·하이브리드·전기차 개발을 이끌었다. 자동차 산업을 오랫동안 현장에서 이끌어온 저자는 기술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기업의 선택과 타이밍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자동차 패권 질서는 혼란스럽다. 당장이라도 전기차 시대로 넘어갈 듯했던 흐름이 ‘캐즘’에 빠졌기 때문이다. 2020년대 초 테슬라의 급성장으로 전기차가 도로를 뒤덮고 자율주행이 일상이 될 것처럼 보였지만, 2024년을 전후해 전기차 판매 성장률은 오히려 뒷걸음쳤다.



The photo was reportedly part of a marketing campaign by General Electric, which made the charging station in the photo. Photo: miSci - Museum of Innovation and Science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행보도 방향성을 잃었다. 전기차와 배터리 합작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지만, 전기차 캐즘의 역습을 맞자 전략 수정에 나섰다. 폭스바겐 그룹은 최근 수년간 유지해온 전기차 중심 전략을 손질하며 약 600억 유로 규모의 투자를 전기차에서 내연기관차 쪽으로 전환했다. 스텔란티스와 GM 등도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 전기차의 공세는 거세지만, 판매의 상당 부분이 중국 내수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반면 스마트폰 시대 변화에 뒤처져 도태됐던 노키아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도요타자동차는 여전히 건재하다. 2020년 이후 글로벌 판매 1위 자리를 2024년까지 5년 연속 지켰고, 2024년에는 역대 최고치인 1030만대 판매를 기록했다.

저자가 현장에서 만난 도요타의 경영진과 기술진은 격변의 시대에도 명확한 전망 아래 자신들만의 경로를 정해왔다. 전기차로의 전환 이전에 하이브리드의 시대가 길게 이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하이브리드 기술에 집중 투자한 전략이 주효했다. 저자는 “도요타는 전기차를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라며 "확실하지 않으면 서둘러 뛰어들지 않는 도요타는 무리한 투자나 불필요한 변화를 최소화하여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토요타의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자동차 역시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차를 병행하는 전방위 전략으로 펴왔다. 무리한 전기차 올인도, 기존 기술에 대한 고집도 피한 유연성이 세계 3위로 도약한 배경이다. 앞으로 친환경차의 방향이 어느 쪽으로 정해지더라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는 평가다. 저자는 5년 내 글로벌 판매량에서 폭스바겐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설 가능성도 제시한다. 향후 적어도 5년, 길게는 2040년까지도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의 위세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현대차가 하이브리드 전용 엔진 개발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점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지적한다.

저자 역시 언젠가는 자율주행 전기차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매 분기, 매해 시장에서 경쟁하며 이익을 내고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타이밍과 기술 선택은 곧 생존의 문제다. 자동차 산업이 거대한 전환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미래는 물론 산업 지형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짚고, 향후 누가 패권을 차지할 것인지에 대해 내부자의 시선에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332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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