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다시 한 번 관객을 ‘판도라’로 초대한다. 영화 ‘아바타’의 배경인 가상의 외계 행성 판도라는 지구와 유사한 중력을 지니지만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대기를 지닌 곳이다. 카메론 감독은 이 행성(판도라)을 인간의 탐욕과 자연 파괴를 비추는 거울로 삼아 식민주의, 환경 파괴, 그리고 가족과 공동체의 본질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이번 주말 극장 개봉한 신작 ‘아바타: 불과 재’는 전편 ‘아바타: 물의 길’ 이후 몇 주 뒤를 배경으로 설리 가족이 상실과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겪는 균열과 성장을 그린다. 카메론 감독은 이 작품을 “전쟁 한복판에 놓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3편은 전작들과 명확하게 다르다. 1편이 새로운 세계의 발견과 순수한 사랑에 집중했다면, 2편은 초대형 수중 생물 툴쿤과 ‘물의 부족’ 리프 피플(메트카이나 부족) 같은 신선한 요소를 소개하며 서사의 복합성을 더했다. 3편은 ‘재’의 부족이라는 새로운 종족을 선보이는 동시에 2편에서 장남을 잃은 비극적 사건의 여파를 심층적으로 파고든다.
지난 2일 베버리힐스 골든글로브 간담회에서 카메론 감독은 “최근 10년간 개인적으로 많은 상실을 겪었고 그 경험이 영화에 진정성으로 스며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상업 영화가 죽음과 슬픔을 ‘복수를 위한 폭력적 단순화’로 다루는 경향을 비판하며, 현실의 슬픔은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는 메시지를 설리 가족의 고통을 통해 전달한다. 3편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변화는 네이티리(조 샐다나)의 내면이다. 2편 ‘물의 길’에서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 가족은 장남 네테이얌을 잃었다. 상실의 고통 속에서 네이티리는 증오에 사로잡히며, 피부색과 외모로 상대를 판단하는 편견에 빠진다. 카메론 감독은 이 과정을 통해 캐릭터가 내면의 편견과 싸우며 사람들의 진정한 가치를 보는 법을 배워가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차남 로악(브리튼 달튼)이 이야기의 화자가 된다는 점도 부각된다. 전설적 인물인 아버지 제이크의 그림자 아래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가족 내에서조차 이방인처럼 느끼는 로악의 감정은 오늘날 젊은 세대가 겪는 정체성과 자존감 문제를 거울처럼 반영한다. ‘불과 재’는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은유적으로 조명한다. 설리 가족은 폭력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하는 난민이 된다. 인간 출신 스파이더(잭 챔피언)는 나비족이 되기를 갈망하며 몸을 파란색으로 칠한다. 그럼에도 스파이더를 대하는 네이티리의 증오와 그를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증오가 세대를 거쳐 멈출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카메론 감독은 아카데미를 빛낸 배우들(케이트 윈슬렛, 조 샐다나, 시고니 위버)의 연기가 단순한 목소리 연기를 넘어 ‘완전한 퍼포먼스 캡처’였음을 강조하며 제작 비화를 공개했다. 특히 시고니 위버는 설리 부부가 입양한 10대 소녀 키리 역할을 위해 18개월 동안 연기했다. 이는 타이타닉 촬영 기간의 3배에 달한다. 카메론 감독은 영화계가 퍼포먼스 캡처를 진정한 연기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에 아쉬움을 표하며 기술의 진보 속에서도 연기 본질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영화 제작비에 대한 질문에 카메론 감독은 솔직하게 답했다. 그는 이를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표현하면서도 “높은 제작비가 3,800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점”을 역설했다. 코로나 팬데믹과 스트리밍 서비스 이후 극장 시장이 30~35% 감소했지만, 여전히 극장 경험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45년간 영화계에서 일한 거장의 확신은 ‘아바타’ 영화가 극장을 위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장엄하고 몰입감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높은 비용의 필연성을 설명한다.
연말 극장가의 기대작 ‘아바타: 불과 재’는 3D 안경을 쓰고 3시간 15분 동안 펼쳐지는 압도적인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그러나 화려한 시각효과를 넘어 인간의 상실, 치유, 그리고 희망에 대한 깊은 메시지는 역시 긴 고통을 참아내는 인내에서 비롯됨을 확인하게 한다.
/하은선 골든글로브 재단(GGF)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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