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한국전력공사가 발주한 전력기기 입찰 과정에서 7년간 수천억 원대 담합을 벌인 혐의를 받는 LS일렉트릭과 일진전기 등 주요 업체 임직원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이러한 담합으로 한전의 조달 비용이 상승했고 그 부담이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물가에도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담합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최근 LS일렉트릭과 일진전기 등 전력기기 제조사 임직원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이들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총 5600억 원 규모로 진행된 한전의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입찰 과정에서 낙찰가를 높이고 안정적인 물량 확보를 위해 사전에 물량 배분을 논의하는 등 담합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GIS는 발전소와 변전소에서 과도한 전류를 신속히 차단해 전력 설비를 보호하는 핵심 장치다.
검찰은 10월 15일 효성중공업과 LS일렉트릭, HD현대일렉트릭, 일진전기 등 주요 전력기기 제조사를 대상으로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후 약 두 달간 10여 개 업체를 상대로 관련 임직원 수십 명을 조사하며 담합 구조와 각 업체의 관여 정도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이 과정에서 범행 가담 정도가 비교적 명확하다고 판단된 핵심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신병 확보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전력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담합으로 전력기기 낙찰가가 시장 가격을 웃도는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돼 왔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경쟁을 통한 가격 형성이 사실상 차단되면서 한전의 조달 비용이 구조적으로 상승했고, 그 부담이 전기요금 인상 등으로 이어져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됐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담합이 이뤄진 전체 규모가 약 6700억 원에 이르고, 이로 인한 피해액 역시 수천억 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담합에 가담한 기업 법인들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 조치를 한 상태다. 한전 역시 올 7월 담합 가담 의혹을 받는 업체들에 대해 입찰 참가 자격 제한을 통보하고 약 20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해당 기업들은 공정위의 조사와 판단에 문제가 있다며 행정처분 취소 소송으로 맞서고 있다. 현재 피의자 기업들은 김앤장과 세종, 광장, 화우, 율촌, 태평양 등 국내 주요 대형 로펌을 선임해 검찰 수사와 공정위 제재, 관련 소송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검찰 수사가 공정거래 사건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공정위 출신 인맥 중심의 대응 관행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담합 사건의 경우 공정위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진한 대형 로펌이 대응을 주도하며 조사와 제재, 이후 행정소송 단계까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공정거래위원회 퇴직 공무원 80여 명이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 과정에서 보수가 두세 배가량 늘어난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담합에 핵심적으로 관여한 임직원들에 대한 신병을 확보하게 되면 기존 대응 방식에 균열이 생기고 담합의 실체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공정위의 행정소송 결과는 물론, 한전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향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전 국민의 부담을 키웠다는 점에서 서민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 담합 범죄로 평가된다. 서민 생활과 직결된 담합 사건에 대해 엄정 대응을 강조해온 검찰 공정거래조사부의 수사 기조가 이번 사건에도 그대로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검찰은 이르면 다음 달 관련자들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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