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에서 한국의 온라인플랫폼법 등 디지털 규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원 법제사법위원회 산하 반독점소위원회가 마련한 ‘외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표적으로 삼는 방법’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유럽의 미국에 대한 빅테크 규제가 한국으로 확산하고 있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미 무역대표부(USTR)는 “유럽식 디지털 규제를 도입하는 국가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겠다”며 사실상 한국에 경고장을 날렸다.
16일(현지 시간) 미 워싱턴DC 연방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반독점소위 위원장(공화·위스콘신)은 “유럽연합(EU)의 미국 기업에 대한 디지털 규제가 한국으로 확산돼 우려된다”며 “브라질·일본·호주 등에서도 규제가 목격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러 국가들이 미국의 혁신만 모방하고 미국 기업을 규제해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다”며 “미국은 무역 영향력을 활용해 이런 정책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럴 아이사 의원(공화·캘리포니아)도 “한국, 호주, 대부분의 유럽 국가, 브라질 등 우리가 동맹으로 여기는 국가들조차도 (디지털 규제를 통해) 미국의 경쟁력을 해치고 있다”며 “우리와 가장 가까운 동맹국 사이에서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아이사 의원은 그러면서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서울대 교수 시절의 칼럼 글을 팻말에 적어 소개하기도 했다. 팻말에는 “왜 수많은 미국인, 특히 중서부 ‘러스트벨트’ 백인 노동자들이 분노하고 있는가? (중략) 본질은 미국 내부의 정치와 시스템 실패에 있다. 트럼프는 이 분노의 에너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영어 번역본이 적혀 있었다. 해당 칼럼은 주 위원장이 올 8월 ‘슬로우뉴스’에 ‘한미 동맹은 미국산 서비스 상품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게재한 글의 한 부분이다. 주 위원장은 이후 9월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아이사 의원은 “(주 위원장이) 미국을 폄하하고 깎아내렸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조지아주 한국인 구금 사태를 언급하며 “불법으로 자국 노동자를 데려온 행위가 최근 이 정부에 의해 적발됐다”고도 주장했다.
앞서 한미는 팩트시트에서 “망 사용료, 온라인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게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고 합의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쿠팡 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플랫폼 규제안을 담은 법안이 발의되는 등 빅테크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당장 이날 USTR은 X(옛 트위터)에 EU의 미국 디지털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를 비판하며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 EU식 전략을 추구하는 다른 국가에도 유사한 접근 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의회와 행정부가 한국이 EU식 디지털 규제 전략을 취한다고 판단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한국을 겨냥한 언급으로 읽힌다.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도 한국의 규제에 날을 세웠다. 미국 비영리 정책 연구단체인 콤페테레재단의 섕커 싱엄 회장은 “한국의 온라인플랫폼법과 개입주의적 공정위의 정책 결합은 미국계 대형 디지털플랫폼에 부담을 주는 반면 한국 내 재벌과 연계된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제약을 덜 받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분석 모델을 활용해 추정한 결과 한국 경제가 10년간 최대 4500억~4700억 달러의 손실을 입고 미국도 수출 감소와 혁신 약화로 10년간 최대 5000억~5250억 달러(약 774조 원)의 장기적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 같은 분석에 대해 우리 정부와 국내 관련 업계에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나호성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팀장은 “한국과 미국은 비차별 원칙과 최혜국대우라는 기본 원칙에 근거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있어 온라인플랫폼법 때문에 미국 기업이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온라인플랫폼법이 도입되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매년 69조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추정은 국내 통신 서비스 매출액의 1.7배를 넘어서는 수치로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온라인플랫폼법이 국내 플랫폼 기업에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안용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2022년 발간한 논문에서 “규제 논의가 없을 경우에 비해 네이버의 시가총액은 약 16% 낮게 형성됐으며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8조 원 규모에 해당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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