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완성차 기업 폭스바겐이 창사 이후 88년 만에 처음으로 독일 내 공장 폐쇄를 단행한다. 과거 세계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던 폭스바겐은 높은 인건비와 경직된 고용 구조로 생산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전기차 전환에 실패하면서 자국 공장을 닫는 처지가 됐다.
14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독일 드레스덴 공장의 차량 생산을 16일부터 중단한다. 1937년 회사 설립 이후 폭스바겐이 독일에서 생산을 중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드레스덴 공장은 2002년 가동을 시작한 후 누적 생산량 약 20만 대 수준의 소규모 생산기지다. 당초 회사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쇼케이스 성격으로 조성됐지만 고급 세단 페이톤을 조립하고 최근에는 전기차 ID.3를 생산해왔다. 공장 부지는 드레스덴공과대에 임대돼 인공지능(AI), 로보틱스, 반도체 등을 위한 연구 캠퍼스로 활용된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12월 노사가 합의한 구조조정의 연장선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당시 회사가 발표한 합의안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독일 내 일자리를 3만 5000개 이상 감축하기로 했다. 아울러 드레스덴 공장과 오스나브뤼크 공장을 늦어도 2027년까지 닫는 한편 독일 내 핵심 생산기지인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도 조립 라인을 절반 규모로 축소하기로 했다. 회사 측은 일련의 조치를 통해 연간 150억 유로(약 26조 원)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폭스바겐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고질적인 고비용 구조에다 전기차 전환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데 따른 필연적 결과로 읽힌다. 폭스바겐은 세계 최고 수준의 내연기관 기술력을 앞세워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선도했지만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면서 주도권을 잃었다. 특히 생산 인력과 시설 상당 부분이 독일에 집중된 탓에 고질적인 고비용 구조를 해소하지 못한 채 전기차 전환을 맞닥뜨렸고 신차 개발 지연과 시행착오까지 겹치며 대응이 늦어졌다.
그 사이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급부상하며 폭스바겐의 입지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통상 환경이 급변화하면서 고율 관세 부담까지 더해진 점도 부담 요인이다. 폭스바겐은 올해 관세 비용이 최대 50억 유로(약 9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적 부진도 뚜렷하다. 그룹 전체로는 올해 3분기(7~9월) 10억 7000만 유로(약 2조 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2020년 2분기 이후 처음으로 분기 기준 적자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폭스바겐은 중국 현지 개발을 통한 반전을 모색하고 있다. 낮은 인건비와 빠른 개발 속도, 핵심 부품 공급망을 활용하면 독일 대비 전기차 생산 비용을 절반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면서 수익성 제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폭스바겐이 처한 상황이 단기간 내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올해 폭스바겐의 연간 순이익이 52억 유로(약 9조 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124억 유로, 21조 원)에 비해 절반 넘게 이익이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번스타인의 애널리스트 스티븐 라이트먼은 “내년에도 폭스바겐 현금 흐름에 상당한 압박이 있을 것”이라며 “폭스바겐이 지출을 줄이고 영업이익을 끌어올릴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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