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기아(000270)가 미국 정부의 전기차(EV) 전환 속도 조절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전략 수정에 나섰다. 10월 전기차 보조금 폐지로 수요 위축이 본격화하자 신형 모델의 출시 시점을 늦추는 대신 고수익 인기 차종인 하이브리드차(HEV)를 앞세워 단기 실적 방어를 시장 점유율 확대까지 끌어낸다는 구상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EV9 GT와 EV4 등 2개 전기차의 출시 시점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하고 재검토에 들어갔다. 두 차량은 당초 올해 말(EV9 GT)과 내년 1분기(EV4) 각각 미국 진출을 예고한 신형 전기차에 해당한다. 기아는 정해진 일정에 맞춰 출시하기보다는 시장 상황을 면밀히 지켜본 뒤 적절한 시점을 다시 잡기로 했다.
EV9 GT는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의 고성능 모델로 기아의 전동화 기술력을 상징하는 대표 모델로 꼽힌다. 보급형 전기 세단 EV4와 함께 미국 시장에서 수요층을 넓힐 카드로 주목을 받았다. 중저가 전기차 시장을 공략할 뿐만 아니라 고성능 영역으로 진입하려는 소비자까지 흡수할 것이란 기대가 컸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9월 말을 끝으로 종료되면서 시장 분위기는 급변했다.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에 달하던 구매 보조금이 사라지면서 전기차 수요가 크게 꺾인 것이다. 실제 기아의 지난달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1711대로 전년 동월 대비 60.8% 급감했다. 전기차 보조금이 사라진 10월(1331대)에 이어 2개월 연속 2000대에 못 미쳤다. 1~11월 기준으로 보면 전년 동기보다 37.5% 급감한 3만 2131대에 그쳤다.
기아는 하이브리드차 중심의 판매로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한 신형 텔루라이드는 내년 1분기 미국 출시로 EV9 GT·EV4의 공백에 따른 신차 부재를 해소한다. 이 차량은 북미 시장을 겨냥한 대형 SUV로 이번 2세대 모델부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하며 연비 효율성을 대폭 개선했다. 최근 공개한 신형 셀토스도 기존에 없던 하이브리드 모델을 처음 추가했다. 미국 등 북미에서 연간 13만 대(미국 10만 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대차(005380)도 유사한 전략을 펴고 있다. 전동화 전환이라는 큰 방향성은 유지하되 시장 수요 등에 따라 주력 차종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방식이다. 현대차는 올해 4분기부터 미국에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한 신형 팰리세이드 판매를 시작하면서 전기차 부진 상쇄하고 있다. 현대차·기아의 지난달 미국 하이브리차 판매량은 3만 6172대로 전년 동월보다 49% 증가했다.
하이브리드차의 선전으로 현대차·기아의 미국 판매 실적은 올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기대된다. 1~11월 두 회사의 미국 판매량은 159만 9908대로 기존 최대 기록인 지난해 163만 3290대에 바짝 따라 붙었다. 12월 실적까지 고려하면 170만 대를 훨씬 웃돌며 시장 점유율을 더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제너럴모터스·도요타·포드에 이어 미국 시장 점유율 4위를 기록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브리드차는 전기차 대비 충전 인프라 부담이 적고 연비 개선 효과가 뚜렷해 고금리·고물가 환경에서 합리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하이브리드차를 앞세운 현대차·기아의 전략은 판매 실적과 시장 점유율을 동시에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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