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정권이 무너질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그러나 이에 앞서 여러 군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남한과 미국 등을 겨냥한 마지막 압박 카드로 화학무기를 먼저 사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북한은 과연 유사시에 화학(CW·Chemical Weapons)무기 공격에 나설 수 있을까. 그 보다는 북한이 화학무기를 얼마나 보유하고 실전 운용 능력은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보고서가 있다.
지난 2022년 한미 싱크탱크인 미국 랜드(RAND) 연구소와 한국 아산정책연구원은 북한의 생물·화학 무기에 관해 분석한 공동 보고서에서 “북한 특수부대가 에어로졸 분사기를 이용해 사린 독가스를 수도권에 살포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염소(CL)·포스겐(CG)·시안화물(AC)·사린(GB)·소만(GD)·VX 등 화학 무기는 물론 탄저균·보툴리늄 독소·유행성 출혈열·폐 페스트 등 10여종의 생물학 무기 제제까지 보유한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보고서는 “북한은 2500~5000t의 생화학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무기들은 탄도미사일이나 무인기(드론), 특수작전부대 등에 의해 살포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화학무기 제조기술은 1954년 중국·소련으로부터 전수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전 측면에서 방사포와 항공기, 탄도탄 등을 이용해 어느 곳이나 투하가 가능한 수준으로 보인다. 만약 수도권에 1000톤을 사용할 때 대략 12만 5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화학무기 제조 기술을 전수받아 2500~5000톤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심지어 북한은 화학무기금지조약(CWC)에 가입하지 않아 이를 사용하더라도 국제적 비난을 피할 수 있다. 게다가 화학무기를 대량살상무기로 간주하지 않아 북한이 오판할 경우 한반도에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분석이다.
북한의 화학무기와 관련,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oyal United Services Institute)의 ‘북한 비대칭전력 분석 프로그램’ 활동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지난 10월 ‘북한의 화학무기 관련 워크숍도 진행했다. 이 자리에 한국국방연구원(KIDA)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의 군사·안보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북한의 화학무기 보유 능력과 사용 가능성 등을 논의했다.
북한의 화학무기 관련 워크숍에 참석한 진의림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원이 최근 ‘북한의 화학무기 위협과 실전 운용 가능성의 재평가’를 발표해 이 자리에서 논의된 내용을 소개했는데 주목할 만하다.
우선 현재 알려진 북한의 화학무기 추정 보유량(2500~5000톤)이 수십 년간 변화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봤다. 북한은 함흥지역의 연구기관과 화학공업시설(흥남비료공장 등)을 중심으로 공정 운용능력과 전구체 생산 여건을 갖춘 것으로 판단했다.
이를 기반으로 황머스터드, 질소머스터드 등 기본형 화학무기 제조가 가능한 것으로 평가했다. 또 사린(GB), 소만(GD), VX 등 신경작용제 계열의 보유 또는 제조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참고로 북한이 김정남을 독살할 때 사용한 화학무기는 VX로 알려졌다. VX는 독성이 사린보다 100배 강하다고 한다.
다만 정제·탄두화·격리 공정 등 고급 기술 인프라 및 전문인력이 부족해 생산 기술상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참석한 다수의 연구진은 북한을 화학무기의 ‘잠재적 보유국’(latent possessor)으로 평가했다.따라서 북한이 화학무기를 실전보다는 정치적 위협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렇다면 워크숍에선 북한의 화학무기 사용 가능성은 어떻게 평가했을까.
전문가들은 북한이 화학무기를 전면전의 결정적 무기로 사용하기 보다 협상 압박 및 심리적 신호용 도구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대량 살상이 아니라 ‘전쟁 조기 종결’(war termination)이나 ‘협상 조건 유리화’ 측면 카드로 활용한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화학무기를 전면전에 사용하면 국제적 고립과 정권 붕괴로 이어질 위험이 커 실질적 실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 평시에도 국면 및 사회적 공포 조성 등 회색지대 도발'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사회적 공포 조성·심리전 중심의 저강도 공격을 시도해 물리적인 피해 보다는 사회 불신 조성 극대화할 전략이 효과적이기에 그렇다. 아울러 저강도 화학 공격은 사용 주체 파악이 어려워 북한이 가해자로 특정되는 것도 회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진의림 연구원은 “북한의 화학무기 위협은 분명하게 존재하며 화학무기가 정치적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며 “북한의 화학무기 보유는 단순한 군사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협상·억제·정권생존·국제질서 안정에 직결되는 복합적 변수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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