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 2강’ 도약을 목표로 세계 최대 클러스터 조성, 시스템반도체 역량 강화를 골자로 한 반도체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10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반도체 비전과 육성 전략 보고회’에서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매출 10배 확대, 글로벌 넘버원 소재·부품·장비 육성, 남부권 반도체 혁신 벨트 구축 등이 담긴 반도체 지원 로드맵을 공개했다. 2047년까지 70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 팹 10기를 신설한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웠다. 이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 육성에 국가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행사를 주재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에 위기감을 느끼고 ‘국가 역량 결집’을 강조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비수도권 반도체 단지에 한해 주52시간 근로제 적용 예외를 추진하는 것도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가 ‘말잔치’에 그쳐서는 안 된다. 반도체 2강 도약의 성패는 기업들이 바라는 지원책을 얼마나 빠르게 실행하느냐에 달렸다. 역대 정부는 다양한 반도체 정책을 내놓았지만 입법과 제도가 뒤따르지 않아 대부분 용두사미로 끝났다.
우선 기업들의 기대에도 마냥 미뤄지고 있는 반도체특별법을 완전무결하게 속히 처리해야 한다. ‘주52시간 근무 예외’가 빠진 ‘반쪽짜리’ 법안으로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여야 강경 대치와 부처 간 엇박자로 지지부진해진 금산분리 완화도 서둘러야 한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같은 첨단 공정에는 수십조 원의 투자가 필요한데 금산분리 족쇄에 꽁꽁 묶여 대규모 자금 마련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를 봐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엔비디아 AI 칩 ‘H200’의 대중국 수출을 허용했지만 중국은 되레 사용을 규제하려 할 정도로 무섭게 성장했다. 미국 조치에 기대지 않고 첨단 반도체 내재화에 속도를 내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느껴진다. 2014년부터 대규모 반도체 펀드를 조성 중인 중국은 562조 원의 투자 실탄을 쌓아놓고 AI 칩 개발과 팹 건설, 데이터센터 신설, 인재 양성 등에 쏟아부었다. 그 덕에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가능했다. 이제 반도체 산업은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의 명운을 건 ‘국가 대항전’이 됐다. 반도체특별법 보완과 금산분리 완화, 원전 육성, 규제 혁파 등을 담은 종합 지원책 없이는 반도체 2강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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