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오페라 걸작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초연 160년 만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막 제작돼 선보이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4~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총 4회 공연이 진행됐고 러닝타임만 5시간이 넘는 대작임에도 객석은 바그네리안들과 클래식 팬들로 연일 열기를 이어갔다. 작품을 보기 위해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야 하는 강행군임에도 관객 반응은 뜨거웠다.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공동 제작한 이번 공연은 국내 오페라 제작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낭만주의의 정점이자 기존 조성 체계를 뒤흔든 음악사적 전환점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한국 프로덕션으로 완성해 무대에 올렸다는 점에서다. 남녀 주인공과 무대 연출은 해외 거장을 기용했지만 주요 조·단역과 합창단, 오케스트라 등 제작의 상당 부분을 국내 역량으로 채운 것도 의미가 크다.
주요 배역 중 특히 이졸데의 더블 캐스트는 각기 다른 매력으로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4·6일 공연의 캐서린 포스터는 노련한 호흡과 안정된 가창으로 완성도 있는 무대를 보여줬다. 5·7일 무대에 오른 엘리슈카 바이소바는 압도적인 성량으로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는 음성을 들려주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트리스탄 역의 스튜어트 스켈턴(4·6일)은 견고한 해석에도 체구로 인한 동선 처리가 제한적으로 보였고, 브라이언 레지스터(5·7일)는 매력적인 음색에도 성량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국내 성악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특히 마르케 왕을 맡은 베이스 박종민은 충신에게 당한 배신과 실연이 뒤엉킨 비탄을 장중한 저음으로 풀어내며 객석 구석구석까지 울림을 전했다.
연출과 무대, 의상은 호불호를 낳았다. 원작 속 콘월과 아일랜드를 오가는 배는 우주선으로, 바다는 광활한 우주로 치환됐다. 바그너의 ‘죽음을 통한 사랑의 완성’이라는 삶을 부정하고 죽음을 동경하는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무한성으로 완성되는 영원한 사랑’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재해석하는 시도에서다. 160년이 된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 별똥별이 쏟아지는 듯한 상징적 이미지와 스타트렉을 연상시키는 의상은 신선하다는 반응과 함께 감정 이입의 측면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동시에 나왔다.
처음 제시됐던 3가지 무대 세트 대신 반사경 구조물 하나만 고정해 사용한 점도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이 거울은 각도에 따라 오케스트라 피트의 지휘자가 그대로 비쳐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순간이 발생했다.
서울시향은 이번 작품의 또 다른 주역이었다. 오페라 반주에 특화된 오케스트라가 아님에도 난이도 높은 전곡을 완성도 높게 소화해냈다. 서울시향은 연습실 바닥에 피트의 크기를 직접 그려 넣고 서로 팔이 닿을 만큼 밀착한 상태에서 합주를 이어왔다고 한다. 정기 공연 일정과 겹친 강행군 속에서도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의 강렬한 지휘 아래 음악적 완성도를 끌어냈다. 다만 츠베덴 음악감독 특유의 빠른 템포는 일부 성악가들에게 호흡의 부담을 주며 균형 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초연은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으나 한국 오페라계에 새로운 지평을 연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이정표로 남을 전망이다. 국립오페라단 관계자는 “이번 공연이 국내 오페라 제작 능력을 한단계 끌어 올리고 오페라계에 활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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