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LA FC)이 떠난 잉글랜드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는 ‘토트넘 라이벌’ 아스널이 지배하고 있다.
아스널은 4일(한국 시간) 런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치른 브렌트퍼드와의 2025~2026 EPL 홈 경기에서 2대0으로 이겼다. 전반 11분 미켈 메리노가 헤더 결승골을 넣었고 후반 추가 시간 부카요 사카가 메리노의 패스를 받아 쐐기골을 뽑았다.
아스널은 이번 시즌 리그 등 공식 경기 18차례 무패 행진과 8경기 연속 홈 승리를 이어갔다. 10승 3무 1패로 승점 33을 쌓아 2위 맨체스터 시티(승점 28)에 5점 앞선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아스널은 지난 시즌도 2위에 오를 만큼 잘했다. 하지만 우승팀 리버풀과 승점 10이나 차이가 있어 조명 받지 못했다. 리버풀이 8위로 추락하고 맨시티도 예전만큼 힘을 못 쓰는 이번 시즌은 그야말로 아스널 세상이 되고 있다. 토트넘과 북런던 라이벌이지만 지난달 맞대결에서 손흥민 없는 토트넘은 아스널에 1대4로 대패했다. 토트넘은 이날 현재 11위에 처져 있다. 라이벌이라는 말이 민망해졌다.
EPL은 팀당 38경기 일정이다. 전체 일정의 3분의 1을 지나 절반으로 향해 가는데 아스널은 한 번밖에 지지 않았다. 더욱이 14경기에서 단 7실점했다. 2004~2005시즌 첼시가 이룬 최소 실점(15골 허용) 우승 기록을 아스널이 깰지 벌써 관심이 모인다.
이번 시즌 아스널은 ‘이상한 팀’이다. 부상자가 끊이지 않아 이렇게 정신없는 부상 병동이 또 없는데 지지 않는 축구를 한다. 에이스 마르틴 외데고르와 핵심 수비수 가브리엘 마갈량이스, 주포 카이 하베르츠가 줄부상이고 올 시즌 이적료 1180억 원을 주고 영입한 빅토르 요케레스도 부상으로 신음했다. 하지만 ‘대타’로 들어간 선수가 너무 잘해주면서 아스널은 2004년 이후 22년 만의 우승을 세차게 두드리고 있다.
이날 1골 1도움을 올린 메리노가 대표적이다. 스페인의 유로(유럽축구선수권) 2024 우승 주역인 메리노는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지난 시즌 EPL에 복귀해 ‘아스널 축구’ 적응기를 거쳤다. 본업은 수비형 미드필더인데 미켈 아르테타 아스널 감독은 메리노를 ‘9번 공격수(정통 스트라이커라는 뜻)’로 쓴다. 요케레스의 부상 공백 때문이다. 감독의 보는 눈은 정확했다. 스트라이커를 맡으라는 감독의 말을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는 메리노는 최근 5경기 3골 3도움을 책임지며 ‘미들라이커(미드필더+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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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타 감독을 국내 축구 팬들은 존경의 의미를 담아 ‘테버지(아르테타+아버지)’라고 부른다. 아스널 감독으로 7년째를 보내면서 전술 유연성과 완성도가 절정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직전 경기인 첼시전을 1대1 무승부로 마친 뒤 선발 라인업 중 3명을 바꾸며 변화를 줬는데 이 중 2명이 이날 결승골 어시스트와 기점 역할을 했다.
줄부상을 극복하는 또 다른 비결은 세트피스 조직력이다. 전체 27골 가운데 12골을 세트피스로 넣었다. 특히 코너킥 득점이 8골이다. 아르테타는 과거 집요한 세트피스 전문 코치기도 했다.
코너킥을 득점으로 연결하는 힘은 킥의 전달력과 골 결정력도 있지만 핵심은 ‘스크리닝’이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 1대1 마크로 상대 수비와 골키퍼를 괴롭히는 전술이 그 어느 팀보다 체계적이다. 파울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몸으로 밀거나 시야를 가려 움직임을 방해한다. 헤딩 등 슈팅을 할 선수가 제자리에서가 아니라 달려오면서 강하게 머리에 맞힐 수 있도록 철저한 설계로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4~5명이 골 포스트 쪽으로 수비들을 끌고 가면 포스트에서 먼 쪽에 있던 선수가 달려들며 헤딩하는 게 기본 전술이다.
오른쪽 코너 때는 부카요 사카, 왼쪽에서는 데클런 라이스가 주로 키커로 나서며 킥의 타깃은 대부분 ‘6야드 박스’다. 페널티 박스 내에 골 포스트를 감싼 작은 박스를 말한다. 물론 롱킥 대신 짧은 패스를 거치는 방법 등 여러 변주를 통해 상대의 준비를 헷갈리게 하기도 한다.
아스널의 우승 대업에 변수는 역시 부상이다. 요케레스가 최근 돌아왔지만 이날 수비수 크리스티안 모스케라와 미드필더 라이스가 경기를 마치지 못하고 절뚝거리며 교체돼나갔다. 아르테타 감독은 “선수들은 기계가 아니다”라며 살인 일정에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그저 오늘을 살고 순간을 살아내면서 닥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연승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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