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과 파면으로 이어진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1년이 지난 지금, 형식상의 계엄은 끝났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윤 전 대통령은 내란수괴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도 극우 유튜버를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물”이라 칭송하며 강한 확증 편향을 드러냈다.
계엄 담화와 일부 유튜버 발언의 유사성은 이 사태가 개인의 일탈을 넘어선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오늘날 시민의 인지구조와 정치적 선택을 형성하는 핵심 환경은 토론회나 신문이 아니라 상업적 이익에 최적화된 플랫폼의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다.
추천 알고리즘은 시청 기록과 체류 시간, 클릭 패턴을 분석해 무엇을 먼저 보여줄지, 무엇을 숨길지를 정한다. 편리함 뒤에서 편향 강화, 에코챔버, 양극화가 자라난다. 한 번 극단적 콘텐츠를 보기 시작하면 비슷한 영상만 쏟아지는 ‘필터버블’ 속에서 사용자는 다른 현실을 볼 기회 자체를 잃는다.
‘12·3 계엄 사태’를 둘러싼 풍경은 이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헌법재판소 앞 탄핵 반대 집회와 광화문 탄핵 찬성 집회에 모인 시민들은 같은 헌법, 같은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영상을 보며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어느 쪽은 “헌정을 지키는 최후의 조치”만, 다른 쪽은 “민주주의 파괴를 위한 쿠데타”만 각자의 알고리즘이 골라준 화면으로 확인했다. 이 구조 위에 데이터 프로파일링과 맞춤형 정치 광고가 결합하면 위험은 커진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사례처럼 마이크로타기팅이 디지털 생태계와 얽히면 선거의 공정성과 시민의 자기 결정권을 잠식하는 장치가 된다. 계엄령이 내려오기 훨씬 전 민주주의의 심장이 조용히 훼손될 수 있다는 뜻이다.
눈에 보이는 계엄은 국회와 법원, 시민의 저항으로 해제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정보 생태계의 왜곡과 편향은 별도의 민주적 통제장치가 없는 한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된다.
해법은 알고리즘 투명성 기구다.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에는 알고리즘의 기본 원리와 정치 콘텐츠 노출 패턴을 공개하도록 하고 편향성을 상시 모니터링해야 한다. 허위·조작 정보를 상습 유포하는 채널에 대한 수익 차단과 제재를 강화하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
하지만 규제와 교육만으로 부족하다. 상업적 알고리즘을 그대로 둔 채 시민에게만 “균형 잡힌 시각”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국가와 지방정부, 학계와 시민사회가 함께 공공성을 지향하는 새로운 알고리즘 레이어, 가칭 ‘밸런스 AI’와 같은 공익적 정보 조정 도구를 설계해야 한다. 정보 편향을 시각화해 스스로 점검하게 하고 잘못된 정보나 허위 정보에는 경고를 붙이며 하나의 쟁점에 대해 여러 관점을 함께 보여주는 도구다. 정권의 입맛대로 콘텐츠를 거르는 검열 장치가 아니라 시민이 자신의 정보 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 수단이어야 한다.
계엄 1년을 맞는 지금 우리가 다시 써야 할 사회계약은 분명하다. 디지털 플랫폼과 AI 알고리즘의 힘을 어떻게 민주적 통제 아래 둘 것인가, 인간과 ‘지능 인프라’ 사이의 주권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정보와 알고리즘에 대한 통제권을 시민의 손에 되찾을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영영 내주고 또 다른 비상 체제의 유혹 앞에 설 것인가. 이제 국회와 정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보이지 않는 계엄을 해제할 구체적 설계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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