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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노란봉투법 통해 양극화 해소…반복된 심야노동, 시간 규제 검토"

[서경이 만난 사람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대담=윤홍우 사회부장

원·하청 자율교섭하되 노동위 중재

“노사관계, 사법문제로 비화 안돼”

노란봉투법 '모범 사업장' 선 그어

정년 연장 정부안 고려 안하지만

“세대 상생하는 타협안 마련돼야”

심야노동, 근로시간 준만큼 인력

고용 형태 관계없이 정당한 대우

'일하는 사람 권리 기본법' 제정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규모가 큰 노동조합, 원청 노조는 ‘연대’라는 기본적인 정신을 보다 확장할 계기로 생각하고 ‘좋은 원·하청 노사 교섭 모델’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노동계의 책임과 권한이 커진 만큼 사회적 책임이 뒤따라야 하며 경영계 또한 한국의 고용 관계가 왜 이렇게 복잡해졌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3월 시행될 예정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안)’과 관련해 “노사 관계는 ‘사법화’가 돼선 안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조 또한 원청 사측과 교섭할 수 있도록 하청 노조의 교섭권을 크게 강화해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반면 현장에서는 노사 교섭 틀 안에 하청 노조가 들어오게 되면서 사업장마다 법적 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원청 사측 이익을 하청 노조와 나눠야 하는 원청 노조 입장에서는 하청 노조를 견제하거나 대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장관이 원청 노조를 향해 ‘연대 정신을 발휘해 달라’고 당부한 배경이다. 김 장관은 “노란봉투법 시행령 개정안은 하청 노조의 실질적인 교섭권을 보장하는 데 맞춰졌다”며 “정부는 노사 가운데에서 의견을 듣고 법 시행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노사는 지난달 25일 입법예고된 노란봉투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뚜렷한 입장 차를 보이며 정면충돌했다. 개정안은 원·하청 자율 교섭이 어려울 경우 준사법기관인 ‘노동위원회’가 원·하청과 하청 간 교섭 층위를 나눌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중재자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다.

이 같은 방안에 대해 노사 모두 불만을 표하고 있다. 노동계는 원했던 자율 교섭이 불가능해졌다는 입장이며 경영계는 하청과 교섭 부담이 여전하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이와 관련해 김 장관은 “노동계 주장처럼 자율 교섭을 찬성하지만 하청 노조가 각각 나섰을 때 원청에 대한 교섭력을 획득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또 경제계가 하청 노조에 대해 ‘사용자(교섭 대상)’인지 모르겠다며 사법으로 문제를 끌고 갈 경우 해당 기간 동안 하청 노조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란봉투법이 작동하려면 정부가 ‘기본적인 교섭 룰’을 만들고 노동위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판단하는 형태가 최선이라는 뜻이다. 김 장관은 노동위 역할에 대해 “노사가 법원으로 가지 않도록 노동위가 신속하게 교섭 단위와 원청의 사용자성을 판단할 것”이라며 “노동위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인력을 충원하는 등 여러 지원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노란봉투법 1호(모범 교섭) 사업장과 같은 방식을 만들 계획은 없다”며 일각의 추측에 대해 확실히 선을 그었다.

김 장관은 각종 우려 속에서도 현재의 원·하청 관계에서 노란봉투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모든 제도는 신뢰라는 자산이 없으면 어떻게 설계되더라도 양극단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대상이 된다”며 “노란봉투법이 원·하청 격차를 좁혀 노동시장 분절화와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1년, 열두 달 수많은 하청과 어떻게 교섭하란 것인가’라는 경영계의 하소연은 ‘왜 원·하청 고용 관계가 그렇게 복잡한가’로 바꿔 말할 수 있다”며 경영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장관은 서부발전이 한전KPS에 준 1억 원 규모의 노무비 관련 사례를 예시로 들었다. 그는 “1억 원의 노무비가 하청으로 내려가면서 4000만 원대가 됐다”며 “서부발전은 고 김충현 씨에게 바로 5000만 원을 줘도 됐으며 결국 원청이 비용 보다 하청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문제가 이 같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김 씨의 사망 산재는 다단계 하청 구조 하에서 하청 근로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실제 하청 근로자 임금은 원청의 50% 수준에 불과하며 전체 사망 산재의 60%는 하청 근로자다. 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원청이 하청에 이른바 ‘위험을 외주화’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그동안 노동계는 사내 하청 비중이 약 60%로 다단계 하청이 만연한 조선업에서 노란봉투법이 작동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김 장관은 “외국인 노동자가 조선업 현장을 채운 상황은 과거 조선업 호황 때 임금이 동결된 (하청) 숙련공들이 현장을 떠난 게 원인”이라며 “기업은 잘나가는데 외국인이 일자리를 다 차지하고 청년은 실업 상태에 갇혔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 조선업이 세계를 재패할 수 있었던 ‘손기술’이 현장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며 “노란봉투법을 통해 하청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청년이 올 수 있도록 해야 ‘진짜 조선업에 르네상스가 왔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4차·5차까지 이어지는 ‘N차 하청’ 구조를 개선하는 기업은 효율성이 오르며 해당 기업의 노동자는 소속감을 갖고 일할 수 있다”며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 향상이 원청 생산물의 품질 향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만 65세 법정 정년 연장 이슈 또한 최근 노동계의 화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올 4월부터 노사와 정년 연장 논의체(TF)를 구성했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는 노사 합의가 불가능하다며 연내 정년 연장이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경영계는 정년 연장이 청년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며 ‘퇴직 후 재고용’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김 장관은 “사회적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이 대화를 형해화할 수 있는 ‘정부안’을 마련할 계획이 없다”면서도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인한 인구 절벽을 생각하면 정년 연장은 오늘 당장 시행되더라도 늦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법정 정년이 연장될 경우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경영계의 우려에 대해서는 과한 걱정이라는 입장이다. 김 장관은 “정년 연장은 청년이 선호하는 일자리에 한정해 세대 상생을 위한 타협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청년 일자리와 충돌한다는 지적은 13%는 맞고 87%는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시장에서 호봉제와 정년이 보장되는 13%의 대기업 및 공공기관은 ‘세대 상생형’으로 가야 한다”며 “(하지만) 대부분 임금 체계조차 없는 87%의 노동자와 청년 일자리가 충돌한다는 식의 프레임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민주당이 내년도 노동부 예산으로 민주노총 및 한국노총 측에 110억 원 규모의 지원 예산을 할당한 것에 대해서는 “수긍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김 장관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내셔널센터는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및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등 조합원 이익을 넘어서 전체 노동자의 요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며 “양대 노총이 지원에 맞게 활동하고 정책을 논의할 수 있다면 사회적 편익 측면에서도 예산 지원에 대한 논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란봉투법처럼 권한이 있는 곳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며 양대 노총 측에 보다 많은 사회적 역할을 기대했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철학의 일환으로 근로기준법 적용 사업장을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과 관련해서는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이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반발 중이다. 이와 관련해 김 장관은 “‘을들의 전쟁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자주 써왔는데 소상공인과 임금노동자는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연대해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라며 “노동자는 직장 밖에 나오면 소비자라는 점에서 소비 여력이 떨어지면 동네 상권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부는 사각지대를 악용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근절에 집중하려고 한다”며 “지불 능력이 없는 어려운 소상공인을 위한 별도 지원 방안을 관계부처와 논의해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 시대 도래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해서도 김 장관은 해법 찾기에 골몰 중이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챗GPT’ 서비스가 시작된 2022년 11월부터 3년간 청년층 일자리가 21만 1000개 줄었다. AI가 전통적 산업의 일자리 감소는 물론 청년 일자리까지 빼앗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는 25일 ‘산업 전환 고용 안전 전문가’ 포럼을 발족했으며 내년 3월까지 운영될 포럼 논의 결과를 토대로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은 국가AI위원회에 정부위원 중 한 명으로 참여하는 등 AI 시대의 대응책 마련에 적극적이다. 김 장관은 “노동부 장관이 AI위원회에 참여한다는 의미는 AI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라며 “노동부는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AI를 활용하는 사람이 새 일자리로 이동하는 ‘노동이 있는 대전환’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새벽배송은 우리 사회의 트렌드이고 새벽배송 소비자가 존재하는 만큼 별론으로 다뤄져야 합니다. 새벽배송의 필요성이 아니라 반복된 심야 노동 제한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김 장관은 새벽배송 제한 논란과 관련해 “심야 노동은 반복되면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심야 노동에 대한 추가적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새벽배송 논란은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 3차 회의에서 새벽배송 제한 의견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진 후 촉발됐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새벽배송이 아니라 심야 노동 제한 취지에서 제시한 의견이라고 해명했지만 이후 새벽배송 금지 논란으로 확대돼 소비자 선택권 침해 및 노동권 보장 등 이슈가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김 장관은 앞서 국회나 기자간담회에서 “새벽배송 금지를 주장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김 장관의 친노조 성향 때문에 새벽배송 금지를 찬성하는 입장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이에 대해 그는 “국제적으로 심야 노동 제한 방식은 시간과 돈인데 대부분의 국가는 시간으로 제한한다”며 “우리는 심야 노동 제한이 가산수당 50%를 더 얹어 주는 방식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에 심야 노동 인건비 부담을 높이는 방식을 제도화했지만 이 인건비를 감당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심야 노동 근로자의 건강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다뤄졌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정부는 휴게 시간과 휴일을 확대하거나 연속 근무 일수를 제한하는 방식을 통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한다는 계획이다. 김 장관은 “노동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인력이 더 필요한 문제가 발생한다”며 “이 부담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부담할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올해 산재 사망자가 늘어난 상황에 대해서는 “주무장관으로서 면목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정부는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강력한 산재 근절 의지를 밝혔지만 올 1~9월 산재 사망자는 457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 늘었다. 영세 사업장과 고령자 산재 사망이 이 같은 증가세를 주도했다. 김 장관은 “공사 규모 50억 원 이상이나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망 산재 증가세는 꺾였다”며 “정부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찾아가 사고를 막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노동부는 소규모 건설 현장,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 등 안전 관리 역량이 부족한 사업장에 대한 사고 예방과 점검 대책을 강화할 방침이다.

김 장관은 임기 내 목표로 ‘일하는 사람의 권리 기본법’ 또한 서둘러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법은 일하는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정당한 임금을 받고 일할 수 있다는 권리를 명문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를 통해 근로기준법 밖에 있는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근거법’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장관은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일터 민주주의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며 “일하는 사람은 고용 형태를 불문하고 일터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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