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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생명공학기술, 철저한 검증과 관리 필요하다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유전자 예측기술의 무분별한 상업화

근거 부족한데 현대판 우생학 우려

의료용 제한·다양성 존중 규제 시급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자기 자손은 유전적으로 완벽해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생명체의 공통적인 희망일 것이다. 배아 유전 검사는 난치성 유전질환을 막기 위한 제한적 의료 행위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의학 분야의 지식 축적에 더해 유전체 분석 기술과 인공지능(AI)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유전질환의 예측을 넘어서 암이나 당뇨 같은 질병 위험뿐 아니라 지능·외모·성격까지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맞춤형 아기를 약속하고 있다. 획기적으로 낮아진 유전체 분석 비용과 대규모 유전체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고 특정 변이와 질병·특성 간의 연관성 데이터들이 축적됨에 따라 통계적으로 이러한 예측이 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께 세계 최초의 ‘다유전자 기반 배아선택(PGT-P)’ 아기가 태어났으며 미국·유럽 등에서 관련 기업들이 고가의 서비스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통계적 예측이 곧 개인의 운명을 정하거나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조금 과하게 비교를 하자면 생년월일시 기반으로 본 사주가 자신의 인생과 운명을 결정짓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PGT-P를 가능하게 하는 다유전자 위험 점수는 본질적으로 인구 집단 수준에서 의미가 있을 뿐이지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몇 개의 배아를 비교하는 데는 정확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실제 아직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한 연구는 없다. 그럼에도 일부 기업들은 지능·성격·외모 같은 비의학적 특성까지 예측해줄 수 있다며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뉴클리어스 지노믹스사는 유전체 기반으로 2000개가 넘는 특성을 예측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미국의 헤라사이트사도 지능, 외모, 행동 특성 등 복합 유전 형질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심지어 같은 부모의 10개 배아 사이에서 IQ가 15점이나 차이 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이들 혁신적 기업의 기술력을 폄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으로 말하는 것은 투자자를 모으고 고객을 유혹하기에는 매력적일지 몰라도 과학적으로는 문제가 많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축적된 유전체 데이터가 유럽계에 치우쳐 있어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 등 다양한 인구 집단에서는 예측 오류가 더 크게 나타난다. 영양, 생활 방식, 교육, 가정환경, 사회경제적 조건 등 인간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도 이런 예측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은 결과를 믿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다.

특히 이러한 기술이 상업화되면서 가장 크게 우려되는 것은 현대판 우생학으로 확대될 가능성이다. 아이의 미래를 유전적 점수로 평가하고 부모가 선호하는 특성에 따라 배아를 선택하거나 배제하는 사회는 윤리적인 큰 문제는 물론이고 유전적 계급화를 초래할 것이다. 부유한 계층은 더 많은 배아를 만들고, 더 정교한 분석을 통해 여러 면에서 더 우수한 배아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사회적 불평등에 앞서 유전적 불평등이 큰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인문학적 관점에서도 선택된 배아라는 출발점에서 사람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흔들 수 있다. 소중한 생명이 부모의 맞춤형 선택의 대상이 되고 인간의 다양성에도 문제가 생기면 안되는 것이다.

이는 관련 생명공학 기술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유전병을 예방하고 난치성 질환의 부담을 줄이며 개인 맞춤 의료를 발전시키는 데 유전체 기술은 필수적이다. 의료적 필요성이 명확한 경우에 한해 배아 유전 검사를 사용해야 하며 외모·성격·지능 등 비의학적 특성을 선택하는 형태는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또 기업들이 제시하는 예측 정확성과 임상적 유효성에 대한 검증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지금처럼 기업들의 주장을 그대로 시장에 맡긴다면 소비자 기만이 될 수도 있고 더 심해지면 사회적 혼란까지 가져올 수 있다. 생명공학 기술이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하지 않도록 국가와 국제사회가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첨단기술은 양날의 검이다. 완벽한 아기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다양성 속에서 발전해 온 인간의 역사를 존중해야 한다. 난치병 치료의 희망과 윤리의 경계가 충돌하는 지금,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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